20201009
한글날 책방 문을 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공휴일이라도 쉬어야 한다고 침대에 구르고 있겠지만, 바로 전 주가 추석이어서 맘껏 쉬었으니 오늘은 책방으로 출근했다. 6월부터 추석까지 연휴가 없어서 어떻게 버티나 싶었는데, 이렇게 버티었고 한글날까지 와버렸다. 추석 때 5일이나 회사에 나가지 않았더니, 출근이 다섯 배로 힘들었다. 한글날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퇴사 욕구가 옆구리를 찌르는 것을 넘어 잽을 자꾸 날리는데 둔한 나는 피할 수가 없다.
추석 후유증으로 퇴사 후 계획을 플랜-E까지 그리고 결국 F를 떠올렸다. 추진력 좋게 F와 관련된 교육 기관에 상담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시원하게 카드를 긁을 테니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아직 대학 등록금도 500만 원 정도 남아있다. 외면하고 싶다. 다달이 내야 하는 대출금이나 책방 월세와 아직도 낯을 가린다.
그래도 지출을 감당하면서 무언가 배우기 시작했다. 책방을 열기 전에 책방과 관련된 워크숍이나 북토크가 열리면 무조건 참석했다. 그 시작은 스토리지북앤필름과 여러 책방들에서 연 워크숍이었는데, 당시 신청 가격이 18만 원이었다. 그때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고 놀았어서 모은 돈 없이 육지로 올라와야 하는 상태였다. 이미 몇 기씩 수업을 진행했던 워크숍이라 나중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듣고 싶었다. 마침 서울에 두 달간 인턴을 하기로 했어서 접근성도 좋았다. 결국 엄마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돈을 빌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제 그 워크숍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신청한 한여름에는 수강인원이 많았는데, 아닐 때는 너무 소수라 여러 책방지기들이 모여 워크숍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변수 외에도 지금 코로나 상황만 보아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한글날 책방에 나왔지만 손님 한 명 방문하지 않은 오늘이 억울에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니다.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인스타 팔로워 1k를 만들면 퇴사하겠다는 말을 했다. 친구는 듣더니 그걸 공약으로 걸어 인스타 업로드를 하라고 한다. 인스타 팔로워가 늘면 그걸 믿고 퇴사는 할 수 있겠으나, 퇴사 후에도 난 플랜 A부터 F까지를 고민하고 N 잡러가 될 것이다. 만으로 7개월 책방을 열며 깨달은 건 난 손님보다는 책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다. 책방을 열면 다른 책방들처럼 모임도 열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동네를 연결 짓는 그런 서점이 될 줄 알았으나 난 그저 지금처럼 고요하게 서점을 지키고 싶다. 해가 지는 책방에서 스탠드를 켜 두고 오가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다. 그러려면 회사에 다니는 게 맞는데 회사라는 조직에서 나오고는 싶고, 알 수 없는 마음이다.
다만, 이런 마음을 나의 언어로 늘어놓으면 조금 정리가 되고, 그 글을 읽으면 ‘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 상태이구나.’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한글날까지 버텼으니 크리스마스까지만 버텨보자. 그다음은 적어도 이브날에 생각하자. 오늘은 건실하게 책방 문을 열고 닫았다는 점만 칭찬하자.
아, 이 순간 책방에 손님이 들어왔다! 한글날 문 열기 잘했다.
한글날 영업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