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거는 손님

20201010

by 진진

화장실에 다녀와 책방 문을 여니 손님이 책을 보며 앉아있다. 화장실에 갈 때 문을 잠글 때도 있고 열고 갈 때도 있는데 열고 가길 잘했다. 책방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월세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손님이 나타났다. 에둘러 불편한 질문인 걸 티 내고 싶지만 처세술에 약한 나는 괜히 기존 월세보다 5만 원을 더해서 알려주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평일에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민망해 손님이 묻는 대로 맞다고 대답했다. 프리랜서냐, 평일에 책방에서 작업을 하냐와 같은 말에 네, 네 하다가 더 깊이 물어보는 손님에게 결국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앞으로는 맞는 말만 해야겠다.


알고 보니 전에 왔던 손님이다. 집에 있던 책들을 들고 와 헌책 판매를 시작했는데, 책이 깨끗하다며 처음으로 헌책을 사간 손님이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니 그때가 어렴풋 떠오른다. 손님은 책을 고르면서 자꾸 나에게 말을 건다. 대답을 하긴 하는데 태연한 척하느라 죽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월세를 물었던 것과는 별개로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작가이고, 어떤 유명 서점 사장과 친분이 있어 나에게 소개까지 해줄 수 있다는 호의를 베푸는 것을 보아 넉살 좋게 이야기를 붙여보면 좋겠는데, 땀만 난다. 이래서 어떻게 서점을 운영하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책방 안에서 손님에게 말을 건다면, 그 수단은 책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 가 닿았는 듯 손님은 책을 구경하며 책을 매개로 내게 말을 건다. 헌책에 꽂힌 책갈피, 동네서점에디션으로 나온 박완서의 책, 처음 보는 매거진, 젊은 나이에 영면한 시인의 유고 시집에 대해서...

조금 편해진 것도 같다. 자주 오라는 마음으로 책방 메모지를 건네고 싶다. 어떤 유명 서점 사장님을 소개해준다는 호의 때문은 아니다. 아마 난 그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내가 널 어색하게 여기고 있지만 미워하는 건 아니야.’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책방 메모지 대신 구입한 헌책에 꽂혀 있던 책갈피를 덤으로 드리기로 했다. 책갈피가 덤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본 서점에서 산 코팅된 귀여운 고양이 책갈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손님은 다음에 맛있는 걸 들고 와준다고 한다. 그것도 내일 올 수 있으면 온다는 데 정말 먹을 걸 들고 온다면 벌렁거리는 콧구멍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와주었으면 한다. 동네 분이니 단골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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