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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Nov 08. 2020

제주에서 떠올린 나의 책방

20201108

  제주에 짧게 다녀왔다. 토요일 5시에 도착해 딱새우 회와 전어회를 동문시장에서 포장해 와 먹고 잠들었다. 월요일 오전 비행기였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온전한 1박만 보내고 육지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일정은 ‘산방산 아트북페어’, ‘서실리 방문’. 두 가지 일정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 우선 서실로로 간다. 숙소는 하도리다. 종달리까지 가면 정류장 이름으로 ‘하도리’, ‘하도리동동’ 안내음이 들리는데, 그 단어가 귀여워서 속으로 되내어본 적 있는 마을이다. 하도리에 숙소를 잡은 건 서실리와 가까운 것도 있지만, 여성 전용 숙소가 있어서 묵어보고 싶었다. 마당에 카라반을 개조해 만든 숙소에 묵었는데, 아늑하고 소품들도 옹기종기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로 가득해서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여성 전용 민박을 운영해보고 싶어 일부러 간 곳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덜컥 겁이 났다. 아직 제주의 다른 마을보다 카페나 식당이 많지 않은 하도리 같은 곳에서 나의 터전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앞서 들었다.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는 책방부터 잘 돌봐야지. 나의 책방을 있게 해 준 서실리가 있는 송당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송당은 작년 제주북페어를 참여하면서 가본 곳인데, 그때 들리지 못한 책방이 있다. 문이 닫혀 있어 바깥에서 내부만 슬쩍 들여다본 게 다였다. 서실리 사장님은 그곳에서 내가 서실리를 이어 클래식을 열었듯이, 서실리를 새롭게 꾸려 나가고 있다. 지금 클래식 책방 크기에 대략 4배 정도 되는 듯하다. 넓은 곳으로 가니 그득했던 헌책과 새책들이 더 잘 보이고, 하나하나 눈 마주칠 수 있어 좋았다. 천문학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사려고 혼자 찜 해두었는데, 어느새 다른 손님이 사 갔다. 서실리에 들어가기 전에도 손님들이 서실리를 카메라로 찍고 있고 그 틈 사이로 들어가니 책방 안에도 손님이 꽤 있었다. 반가운 서실리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책방을 구경하다 보니 하나 둘 계산을 마치고 책방을 나갔다. 송당은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인데, 버스가 손님들을 싣고 내리면 버스정류장 앞인 책방에도 손님들이 한 번 훅 들어왔다 나가는 모양이다. 손님이 많아 좋아 보였고, 서실리에 전에 없던 가구나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선물로 들고 간 공 모양의 나무 캔들 홀더가 책방과 잘 어울리는 듯해 마음이 놓였다.


  서실리 사장님 사준 고기국수를 야무지게 먹고, 사장님이 사는 공간도 둘러보고 산방산으로 출발한다. 북페어가 끝나기 전에 출발해야 해서, 급하게 떠났는데 다음에는 오래 머물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산방산 아트북페어는 ‘사계생활’을 중심으로 사계리에서 열렸다. 산반상을 한 번 간 적이 있지만 사계리를 둘러본 적은 없다. 거진 초면이다. ‘사계생활’은 이전에는 농협이었던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프루스트서재 사장님이 알려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 공간이 정말 농협 건물 같아 보인다. 이전에 갔던 춘천 북페어도 그렇고,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새롭게 이용하는 데서 오는 아날로그 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너무 오래 버스를 타고 내려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누군가 아는 척을 해 왔다. 커넥티드북스토어 사장님이다. 서실리에 우르르 내렸던 손님들이 단체로 쓰고 있던 귀여운 귤 모자를 커넥티드 사장님도 쓰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귤을 주었다. 약간 졸린 상태에서 얼레벌레 인사를 하고 나니 내 손에 귤 두 개가 쥐어쥔 것이다. 제주에 온 것이 확실하다.

  이번 북페어가 기대가 되었던 것은 전국 책방들이 참여한 전시 때문이었다. 책방이 추천하는 책을 만나볼 수 있었고, 바로 사 볼 수도 있다. 전에 경주로 템플스테이를 하러 가서 들린 서점 ‘어서어서’가 추천한 ‘어서어서’ 책방 이야기가 담긴 책을 샀다. 사계생활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비건카레도 함께 파는 곳이길래 저녁까지 해결했다. 마침 그 날은 ‘세계 비건의 날’이었다. 다시 2시간 30분을 버스를 타고 하도리로 돌아왔다. 다신 하루 동안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넘나드는 여행은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집에 돌아와 읽다 만 책을 다 읽으니 비가 온다.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여행이었다. 비가 올 줄은 몰랐다. 세상은 이런 일 투성이다. 이렇게 일찍 책방을 열게 될 줄도, 안면을 튼 책방 사장님들이 하나 둘 늘어날 줄도, 어떤 사람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될 줄 1년 전만 해도 하나도 모를 일이었다. 아침에도 비가 와서 얼른 편의점으로 가 우산을 사고 조금 일찍 나와 세화리 바다를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제주 여행과 달랐던 게, 예전만큼 제주에서 살고 싶지 않아 졌다. 제주에도 책방이 많아졌고, 숙박업은 아직 엄두가 안 난다. 또 혼자 연고도 없이 낯선 곳에서 터전을 가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이건 아마 서울에 잠자코 있는 작은 나의 책방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서울에 있는 그곳을 나는 종종 떠올렸다. 여행을 간 주말은 책방을 쉬었지만, 다음 주부터는 다시 정상 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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