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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Nov 20. 2020

회사원의 도서 납품기

20201114

  책방을 시작하면서 도서관 납품도 함께하고 있다. 책방 소재지인 서울 성동구는 동네 책방을 대상으로 도서관 도서 납품을 의뢰한다. 이곳에 터를 잡기 전부터 알고 있던 정보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책방을 하기로 하고 나서는 도서관 납품까지 할 수 있을지 결심이 서질 않았다. 당시 도서관 담당자 분이 주말에도 납품을 할 수 있고, 서점 규모와는 상관없이 납품이 가능하다고 망설이는 내게 말씀해주신 덕에 시작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주문한 도서를 도서관을 보내고 그곳에서 도서를 순번대로 정리해 납품한다. 도서관은 주말에도 여니 평소 보다 서두르면 책방 오픈 시간 전에 납품을 마치고 책방으로 출근할 수 있다. 그래도 혼자 일 하다 보니 급하게 도서를 필요로 하는 경우나, 외부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일정과 겹치는 경우 난감한 적도 있다. 그런 난감함은 얼마고 감당할 수 있다. 사실상 도서관 수입원으로 책방의 월세와 도서 구매를 해결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잊을 만 하면 돌아오는 도서관 납품 메일이 왔다. 담당자도 바뀌고, 원래였다면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는데 도서 납품 업체에 책을 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일은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을 이미 주고받은 사서 분들을 뵙고 납품하는 일이어서 부담이 적었는데 낯선 곳에 가려니 조금 겁이 났다. 언제나 책방 일에 있어 의지가 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납품을 함께 가자고 했다. 도서관 납품을 처음 시작할 때는 친구에게 알바비를 주고 함께 가자고 했었다. 지금은 혼자서도 잘 가지만, 무엇이든 처음은 두려운 법이다. 도서관이 아닌 곳으로 납품 장소가 바뀌면서 가장 큰 단점은 주말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고이 남겨둔 하루치 연차를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쓰려고 했으나 죄인이 되어 여행을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또, 도서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므로 연차를 미리 내기도 애매하다. 급하게 연차 당일 전날 연차를 내니 팀장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휴가를 줘, 말어.’ 골리는 걸 웃음으로 무마하며 오후반차를 내었다.

  납품을 가기로 한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자리로 가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대량 주문한 도서 도매처에 없는 도서 두 권을 다른 곳에서 주문했는데, 그 도서를 집에 두고 왔다. 다른 날 납품 업체를 가기에는 이미 반차를 내었고, 올해 남은 마지막 반차를 내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집에 갔다가 납품 업체로 가면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다. 엄마에게 사정을 말하고 미리 가서 정리를 하고 있으면 집에 들렸다 가겠다고 부탁했다. 부랴부랴 한 시간 거리인 집으로 가 책을 들고 한 시간 반 거리에 납품 업체에 도착했다. 공장 같은 붉은 건물 3층이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고 남직원들이 한데 모여 담배를 피고 있다. 정문이 어디인지 한참을 찾았다. 혼자 왔다면 많이 쫄았을 광경이다. 정문을 찾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아직 정리를 3분의 1 정도 밖에 마치지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서 납품 업체는 6시 퇴근을 앞두고 있었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먼저 정리하고 있던 엄마를 따라갔더니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정리를 하고 있다. 도서관이었으면 창고 같은 공간이나, 도서관 업무를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거리가 있는 공간인데 그곳은 납품하는 곳 바로 뒤가 누군가의 일터인 것이다. 도착하기 전 엄마의 목소리가 유독 작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았고 또 많이 미안해졌지만 그럴 틈 없이 얼른 정리를 마쳐야 했다.

  무슨 게임을 하듯이 시간에 쫓기며 정리를 하는데,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아마도 전화 통화를 했던 직원분이 남은 도서는 저희가 할 테니 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도서가 남으면 다시 정리하러 오라고 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허겁지겁 정리를 하던 차였다. 결국 20권 정도 남기고 가야 했는데, 너무 아쉬우면서도 죄송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배려가 있는 일터이니 다음부터는 더 책임감을 느끼고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는 납품마다 아마도 엄마와 함께 오기로 했다. 사실 엄마는 공식적으로 책방의 대표이다. 대표님과 함께하는 도서 납품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한다. 인건비는 못 벌어도 월세와 책값은 벌어야 하니까, 납품을 마치고서 엄마랑 소고기를 먹었다. 책방하면서 소고기 값도 번 몇 안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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