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쿤 치앙마이4 - 영화관 소동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마야몰에는 영화관이 있다.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가 상영 표를 알려줘서 구미가 당겼다. 다름 아닌 패왕별희를 상영한다는 것. 아껴두고 보지 않은 영화라 태국에서 보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영어 자막을 해석하지 못할까 봐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줄거리까지 모두 찾아보았는데, 영화가 세 시간이라는 걸 알고 보기를 포기했다. 영화 상영 시간은 8시부터였고 친구들은 스윙을 추러 가서 영화는 나 혼자 봐야 했다. 영화가 끝나면 밤 11시라 혼자 숙소에 가기에는 위험했다. 아쉽지만 패왕별희 관람은 더 미루기로 했다.
그 이후로 종종 상영 표를 찾아봤다. 기생충이 간간히 상영하고 있었다. 기생충은 상영 직전에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봉준호의 전작이 나의 취향과 맞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며 결국 무료 vod가 떴을 때 본 영화다. 기생충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고 나도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으니 함께 기생충을 보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태국의 영화표 값은 한국에 비해 월등히 싸다. 우리는 120 바트, 한화로 약 5000원 안 되는 가격에 영화를 봤다. 이곳도 영화관 간식만큼은 비싸고 양이 적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치즈 소시지를 다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태국 국왕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시작하는데, 친구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영상이라면 창피해서 숨을 그런 영상이 틀어진다.
영화가 시작했는데 불이 꺼지지 않는다. 태국 영화관은 원래 이런 건지. 먼저 버즈 오브 프레이를 보고 온 친구에게 물으니 아니란다. 아니겠지. 영화가 시작하고 5분쯤 흘렀을까. 그제야 불이 꺼진다.
확실히 스크린으로 본 기생충은 압도적이었다. vod로 볼 때는 보기 싫은 장면 같은 건 넘겨가면서 봤는데 그럴 수 없으니 표정은 구겨지면서 이해도는 높아졌다. 사실 연교와 기정의 연기가 한 번 더 보고 싶어 져서 간 거라 만족도는 높았다. 특히 연교의 연기는 정말, 나는 연교를 사랑한다. 사랑이라고 봐야지. 기생충을 처음 보고 가장 놀란 건 문광의 연기 톤이었다. 그때 나는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있었고 그 전에도 이정은의 연기를 본 적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런 문광의 연기가 치솟고 극의 상황이 몰아칠 때 깜깜. 화면이 까매졌다. 몇 초 정도는 영화에 원래 이런 장면이 있는 줄 알았다. 장면 전환 뭐 그런 거. 근데 그 시간이 길어지고 웅성웅성. 친구에게 다시 물어봤다. 기생충 원래 이래? 또 아니란다. 아니겠지. 행동력 좋은 관객 몇 명이 뒤로 가 직원에게 상황을 물어본다. 대충 들어보니 고치려면 15분 정도 걸린다는데 아니, 이곳은 영화 보는 중간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게 비일비재한 걸까? 한국이라면 환불을 해주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이 있었을 텐데. 싼 값에 봤으니 일단 넘어간다. 사실 그 상황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깜깜한 영화관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겠지. 이 영화관 계획이 있는 거야? 어쨌든 영화는 다시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올해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가 기생충, 그것도 태국에서 본 영화다. 내 옆에서 상황을 설명해주고 함께 호들갑을 떨어준 친구에게 컵쿤!
이후 기생충은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고 드문 드문 하나밖에 없었던 시간대가 꽤 늘어났다. 부디 결정적인 장면에서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