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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ug 21. 2019

[서평]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밥장, 남해의봄날

  올 초 부천 책방 오키로북스에 고민을 적고 왔다.

  '좋아하는 일은 있는데, 돈도 벌면서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고민을 적고 앞서 질문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글을 보니 비슷한 고민이 많다.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좋아하는 일과 돈 버는 일이 공존할 수 있을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가 큰 화두였다. 

  이런 질문에 밥장님은 이렇게 답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좋아하는 일을 할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난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장교로 군대를 나와 회사에 다니던 밥장님은 그림을 그리며 통영에 살고 있다. 우리가 고민하던 삶의 무게 중심을 영차하고 옮긴 사람의 이야기는 질문에 답이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잘 살고 있는 사람의 답이 궁금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 삶이 공허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하며 사느냐에 앞서 어디에서 사느냐는 그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에 쭉 살았던 사람은 서울에서 터를 잡기 쉽고, 경기도에 오래 살았던 사람은 두 시간 이동 거리쯤은 쉽게 생각한다. 바다가 고향인 사람은 뭍으로 올라가고 싶지만, 이내 바다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책 제목부터 우리는 밥장님이 어떻게 통영에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의 고향이 통영인가? 고향은 어떤 곳인가? 고향이 태어난 곳이라면, 밥장님의 고향은 통영이 아니다. 고향이 나고 자란 곳이라면 역시 밥장님의 고향은 통영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통영이다. 처음 짧은 통영살이를 할 때 그는 서울의 친구를 그리워했지만 두 번째 긴 통영살이를 할 때에는 서울과 통영의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터를 잡고 본격적인 통영살이를 시작하며 그의 고향은 통영이 됐다. 고향을 정한다는 것, 살아갈 터전을 정하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소라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린다. 태어난 곳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한 삶을 원한다면, 먼저 그런 선택을 내린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통영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갔던 통영이 떠올랐다. 두 여행의 목적은 완전히 달랐다. 처음 여행은 '회 한 접시 후딱 해치우고 바삐 떠나는 1박 2일' 여행이었다면, 두 번째는 좋아하는 서점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물론 두 여행 모두 짧은 일정이었지만 두 번째 여행은 '애써 볼 것과 탈것을 만들어' 낸 여행은 아니었다. 두 번째 여행이 좀 더 밥장님의 통영살이와 비슷하다. 통영에 한 번이라도 가본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던 통영이 떠오르고 다시 그 도시에 가보고 싶어 질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밥장님의 책은 그의 손글씨와 그림으로도 채워져 있다. 그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다 내 기억을 떠올리는 게 꼭 교환일기를 나누는 것만 같다. 요즘은 일기를 SNS로 대체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수줍게 교환일기 같이 쓸래? 묻지 않아도 서로의 근황이나 고민, 어떤 영화를 보았고 무슨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책 한 권에 담긴 그의 통영일기에는 정사각형 프레임에는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의 선, 다정한 눈으로 보았을 누군가의 얼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펜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메시지 중 서울이 아닌 곳에 터전을 잡고 싶은 나에게 힘이 된 메시지가 있다.

웨이터는 전문가야. 한두 번 와서는 아는 체 안 해.
그런데 세 번째 오잖아. 먼저 인사 건네고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도 이미 다 안다. 여기선 이게 서비스야


  고향을 내가 정한다고 해도 그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덤을 받는데 나만 못 받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에 통영식 서비스인 '제값 주고 제대로 받기'는 타지에서 온 이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다. 적어도 세 번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는 노력이 있다면 그게 사람이든, 가게든, 동네든 마음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친구와 돌아오는 겨울에 낯선 나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다. 통영보다 낯선 나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이때 이 책을 만나서 마음이 놓인다. 한 달 동안 지낼 곳이라 자잘한 계획보다 큰 규칙을 먼저 세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SNS를 지우는 것이다. SNS는 지우고 같이 가는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기로 했다. 밥장님의 통영과 나의 통영을 공유했듯이 친구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손글씨로 나누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나의 여행, 살아봄이 들여다보고 싶은 일기장이 되길 바란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 출판사의 가제본을 증정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 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30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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