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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an 31. 2021

직장의 변화

20210131

  매달 말일은 계량기를 체크해 건물주 할머니에게 전한다. 해가 바뀌어 다시 0으로 시작하는 계량기 숫자를 적었다. 건물주이자 책방 옆 세탁소 주인인 사장님에게 가려는데 마침 책방 앞을 지나가신다. 숫자를 전하고 다시 책방으로 들어와 앉으니 다시 할머니가 책방을 찾아오셨다. 저번 달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한전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분명 히터가 꺼진 걸 확인하고, 그다음 주 책방 문을 열었더니 온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몸에는 한기가 돌았다. 히터가 켜져 있던 것이다. 이제는 꼭 코드를 뽑고 퇴근한다. 그 일 때문에 전기세가 전월 대비 배로 나왔다는 소식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잠깐 금액을 듣고 뒷걸음질 쳤지만 원래도 큰 금액은 아니었던 터라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차라리 한겨울 누진세면 나으련만, 요즘은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설날 전후로 결심하게 되지 않을까? 분명 저번 주말 출근 일지에는 버티자고 했는데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책방에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면 나의 직장에는 크다면 큰 변화가 일어났다. 꽤 믿고 의지하던 사수 분이 퇴사했고, 그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분들이 세 분 입사했다. 낯선 인물에 대한 경계심, 업무에 대한 의문을 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안 좋은 태도, 구멍이 많다고 느껴지는 새로운 업무 등 한겨울 누진세 같다. 작년에는 배우고 눈치보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이곳의 생리를 어느 정도 파악해 큰 기대가 없고, 연말과 신년 사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는 회의 후에 너무 무기력해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친구들에게 긴급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이런 진지한 고민 상담은 거의 들어주는 쪽이었는데 작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한 건 오랜만인 것 같다. 라디오에 긴 고민 상담을 요청하듯이 메시지를 적어 보내니 친구들도 그만큼의 분량으로 내게 답을 해 주었다. 그 메시지를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고, 충동적으로 퇴사를 하지는 말자는 판단이 섰지만 일단은 지금 하는 일에 어떠한 애정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애정을 갖고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해 새롭게 입사한 상사들은  전후 상황을 모른 채 너무 함부로 말한다. 나는 그 상황을 좋게 좋게 넘기는 것에 미숙하다. 서점을 위해 돈을 버는 수단으로 다니는 이 직장에서도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나 보다.


  직장에서는 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트러블을 겪는다면 서점은 그 반대다. 오늘 서점에 오신 손님은 나의 책방을 알아봐 주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하는 말처럼 동네에 사는데, 책방이 있는 줄 몰랐다는 말과 함께 이곳을 ‘보물 같은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흔한 표현이지만 사랑스럽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손님에게 일찍이 책방에 들여놓은 천양희 시인의 시집을 권했다. 군더더기 없이 도서를 구입하고 책을 읽기 좋은 곳이라며 언제 여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분에게 일요일에만 연다고 말씀드리면서 머쓱함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판매한 책을 기록하려고 구매한 도서 목록을 보니 무려 목록 3번째에 적혀 있는 시집을 팔았다. 날이 따듯해지고 코로나도 조금 수그러드니 손님들이 책방을 찾는다. 다시 이곳에 봄이 온다. 직장도 다니다 보면 지나갈 계절이라는 걸 알지만, 춥고 숨고 싶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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