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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Feb 21. 2021

그런 서점, 이런 꿈

20210221

  아주 오랜만에 을지로에 갔다. 지인과 만남 후 헤어지는 길에 저 위 반짝이는 카페를 보았다. 멀리서 보아도 ‘cafe’가 보이는 게, ‘book’으로 스펠링을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서점을 열고 싶다. 작은 언덕 위 1층 책방도 좋지만 애써 올라오지 않으면 닿지 않을 사층 책방을 꿈꿔 본다. 따라오는 생각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라면 묵직한 책이 든 택배를 받기 더 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과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저 위 형형하게 빛나는 책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바다가 담겨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런 곳을 가끔 떠올린다.

  

   이런 꿈도 꾼다. 가까운 책방이 2호점을 내는 꿈, 자리를 옮기는 꿈을 세 번쯤은 꾼 것 같다. 내가 의지하는 어떤 곳이 떠나가는 꿈일 수도, 더 나은 내일로 향하는 꿈일 수도 있겠다. 나의 책방이 이사를 하는 꿈은 아직 꾼 적이 없다. 바라는 점은 있다. 사층에 바다가 보이는 곳,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 곳, 작더라도 창고가 있는 곳... 아주 작은 책방을 열고 싶어 이곳에 책방을 꾸리고 있지만, 가끔은 손님과 너무 밭게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싶다. 값이 나가는 스피커를 들여놓고 스피커와 벽 사이 거리가 다소 떨어져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거리만큼 여유를 둘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속상한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새로 산 난로를 감춰 둘 자리가 없어 집으로 도로 가져가야 하는지, 난감하다. 바라기만 할 때와 직접 해보는 것에는 어쩔 줄 모르겠는 난로만큼의 간극이 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타자 치는 책방지기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대화를 나누며 나의 앞에 놓인 헌책을 쪼그려 앉아 보는 손님을 보면, 어느새 마음이 놓인다. 나도 어떤 책방에서는 사고 싶은 책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이 책방에서 한 권이라도 사가고 싶다는 마음에 둘러보고 또 둘러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책방이 그런 곳과 닮아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평일의 나는 사무실에 앉아 도대체 내가 기획하는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어려운 채로 주어진 업무를 한다. 주말의 책방과는 아주 다르다. 언제쯤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를 위해 돈을 버는 평일의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손님이 책방에 들어오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듯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몸은 긴장하고 신경은 온통 손님에게 쓰인다. 지금처럼 글을 쓰고는 있는 척 하지만, 결국은 무방비인 상태다. 나는 이 긴장과 무방비로 가득 찬 나의 책방이 좋다.


  한참을 책방에서 책을 보던 손님들이 책을 사고 처음으로 책방 도장을 찍어가겠다고 했다. 두 달 전엔가 맞춘 도장이다. 그 이후로 책을 사는 손님들에게 권유하지 못했던 내성적인 사장이라 물건의 쓰임새를 알아준 손님의 방문이 더욱 반갑다. 누군가에게 나의 서점이 그런 서점이며, 가끔은 꿈에도 나오는 곳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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