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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r 21. 2021

무사히 맞은 1년

20210320

  서점 개업이 1주년을 맞았다. 작년 이맘때쯤 가게를 인수받고 아주 소량의 책을 책방에 주문해 어떻게든 책이 많아 보이도록 여기저기 두었다. 전 가게에서 쓰던 책장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변화를 주고 싶어 책방 철문과 창틀에 보라색 페인트를 칠했다. 페인트 색상의 스펙트럼이 넓고 마음에 드는 색이 많아 즐겁게 색을 골랐다. 요령 없이 셀프로 페인트칠을 해서 금방 벗겨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잘 버텨주고 있다. 유리창을 닦는데도 소질이 없어서 자국이 많이 남는 게 스트레스였다. 지금 볕이 드는 창을 보니 창문 닦는 실력도 조금 는 것 같다. 책방에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나온 겨울서점 작가님의 목소리와 김하나 작가님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다. 오늘 하루를 기록하고 싶다.


이를 테면 책방을 지나간 행인들의 대화.


행인 1 클래식책방?

행인 2 이런 책방이 있네

행인 1 원래 (다른 책방이) 있긴 했는데

행인 2 예쁜 것 같다

행인 1 ㅇㅇ이가 좋아할 것 같다

행인 2 신기하다


  원래도 책방이 있던 자리에 생긴 서점, 예쁘고 신기하고 내가 아는 그 애가 좋아할 것 같은 서점. 오늘 책방에 들린 손님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말하는 몸 2>를 사 갔다. 얼마 간 현금이 없어서 책을 매입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하는 북센 장바구니에 수가 점점 늘고 있다. 월급날이 되면 월급의 일정 부분을 떼어 책을 살 것이다. 책을 판 돈으로 책을 산다. 그건 양반이다. 난 월급으로 책을 산다. 소개하고 싶은 책은 많고 돈 쓸 곳은 많다. 곧 도서관 납품을 시작하게 되면 조금 나아질 거라 기대한다. 무사히 계약해야 1년을 또 버틸 텐데. 최근에 신청한 북페어와 지원사업엔 나란히 떨어졌다. 북페어에서 떨어진 건 처음이고, 지원사업은 작년에 한 번 진행했던 사업이지만 이번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쩐지 너무 수월하다 싶었다.

  아니다. 오늘은 일부러 서점을 찾아온다는 손님의 연락을 받았다.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는 데 자신은 없지만 떨리는 걸 숨기고 대화해보려고 한다.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일요일이다. 서점 앞 벚꽃 나무는 아무렇지 않게 꽃을 피울 것이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다. 일 년을 아무렇지 않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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