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지
너무 빨간색이었다.
적어도 9살, 채 10년을 살지 못한 아이의 눈에 보이는 그 바지는 너무도 빨갰다. 새빨간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어릴 적에 나는 정말 수줍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 수 없는 그 고집이 후회스럽다.
그때는 이해가 안가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 테면 그림일기장에 운동장에 줄을 선 내 모습을 그려야 할 때, 나는 5번째로 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일기장에 공간은 네 명을 그리기에도 부족했다. 그대로 그려도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을 어린 나는 내 일기장에 내가 나오지 못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많은 날들을 그림으로 그렸겠지만 이상한 고집을 피운 그 일기가 기억에 선명하다. 아마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판단하는 많은 것들도 10년, 20년 세월이 흘러 돌이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답을 두고 헤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은행 앞에서 만원에 파는 바지였다. 그곳을 지나치면 자수를 넣은 청바지나 레이스가 달린 옷들을 흘깃 쳐다보고는 했다. 그러니까 빨간 바지는 눈에 튀기는 해도 탐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 저런 옷을 살까?’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 바지를 우리 할머니가 사오셨다.
아마 할머니에게 그 빨간색은 더없이 고왔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싸기까지 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그 바지를 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할머니의 눈길을 붙잡을 만큼 빨갰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내 옷을 사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확신이 간다. 그리고 한 번에 집어온 바지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두 번 세 번 지나가다 계속 눈에 밟혀 사온 바지였을 테다. 빨간색이라 계속 눈에 띈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 돈이면 더 예쁜 옷을 샀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괜히 토라졌다.
나는 그 바지를 결국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부끄러운 옷도 아니었는데 정말 어렸다.
그 빨간 바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옷 서랍장 맨 밑을 열어보면 늘 고이 접혀있던 게 마지막 기억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사를 2번 했다. 어제 나는 또 다른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쌌다. 두고 가는 것이 많다. 잠시나마 함께 했던 그것들이 문득 기억 날 때가 있다. 조금 더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곁에 없다. 같이 있고 싶어도 같이 있을 수 없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