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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y 10. 2017

작은 공간의 매력,
<만춘서점>

제주 책방5

함덕에 위치한 만춘서점

  오랜만에 서점 방문이라 더 반가웠던 만춘서점.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처럼 사람이 북적였다. 그 중에서도 서점에 가면 대부분 여성 고객 아니면 커플을 많이 봤는데, 고등학생 쯤 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있어 신기했다. 아마 제주도에 놀러온 김에 서점을 들린 듯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하며 책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보니, 원래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 같았다. '만춘서점'은 함덕 서우봉 해변 옆에 있으니 해변에서 놀다 들렸다 가기 좋은 곳에 위치해있다. 

 함덕 해변 주변에 위치해 있지만, 독특했던 건 제주와 관련된 서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제주4.3 사건과 관련된 책 한 권을 본 것 외에 다른 책을 보지 못했다. 제주의 대부분의 책방들은 제주를 '여행지',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하는 책들이 많았다. 제주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런 이점을 이용해 책들을 비치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책이 없어 더 확고한 취향으로 선별된 책이라는 걸 어렴풋 알 수 있었다. 

  몇 있던 사람들이 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고 하는 동안 책을 구경했다. 서점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나는데, 그 향 처럼 소박한 크기의 서점이다. 그래서인지, 책장에 빼곡히 들어가 있는 책들을 보며 선택 받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펼쳐 놓은 책들 보다 꽂혀 있는 책들이 많다. 책 제목을 읽어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만춘서점은 독립 출판물보다는 기성 출판물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다음에 만춘서점에 들렸을 때, 다른 손님과 한 이야기를 엿들어 보니 독립출판물은 시장이 좁고, 개개인에게 거절의 말씀을 하는 게 미안해 선호하지 않는 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묻지 못하고 엿 들어 죄송했지만 궁금한 점이었다.) 그럼에도 대형 서점이 아닌 함덕의 작은 서점이기 때문에 출판사 별로, 작가 별로, 장르 별로 나눈 책을 천천히 모두 살펴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작은 공간의 서점은 선택 받은 책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 좋다. 조금의 시간을 투자하면 서점이 선택한 책들을 대부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든 책을 구입해 읽는 것이다. 대형 서점도 물론 많은 책을 구비해 놓고 있기 때문에 마음 먹고 원하는 책을 고르려면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워낙 그 양이 방대하다 보니 나중에 가면 지쳐 결국 베스트 셀러로 눈을 돌리거나 신간 도서에 새로운 책이 나오지는 않았는지 보다가 책을 고르게 된다. 또 그 많은 책들 중에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막막해질 때도 있다. 그런 점이 이 작은 공간에 놓인 책들이 더 신뢰가 가는 이유다.


책과 함께 LP판과 CD를 함께 팔고 있는 만춘서점
여느 서점과 마찬가지로 엽서 및 문구를 판매하고 있다.

  책 외에 판매하는 것 중에 눈에 들어오는 건 LP판과 CD였다.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주인분의 취향이 오롯이 반영된 서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서점을 나갈 때 故신해철을 기리는 비석을 보았다.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주구장창 반복해 들었던 때가 있었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그 노래만 부르고 나온 적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어떤 노래를 계속 반복해 들으면 그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그 때의 날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제주 없는 사람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이벤트 중 하나는 요일 하나를 정해 그 날은 한 가수의 노래만 반복해서 틀어 놓는 것이다. 

오늘은 신해철의 노래와 함께합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갔던 날들이 많다. 시간이 지나서는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다 보니 서점을 갈 일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 갔던 서점들은 노래를 틀어놨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새 들른 서점들은 대부분 노래를 틀어 놓거나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곧잘 노래를 듣는 편인데,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내 취향을 저격하는 노래가 나오면 기분이 정말 좋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내내 나오는 날이면 책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서점에 들러 괜히 책을 들춰보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우리 서점을 기억해준다면 이벤트는 성공이다.  


 책을 사면 연필 한 자루를 덤으로 준다.

  만춘서점 만에 폰트가 눈에 띄었다. 통이 마음에 들었다. 안에는 연필 자루가 들어 있는데,  연필을 쓰는 편이 아니라 사지 않았다. 다시 보니 안에 들어 있는 연필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고 통만 필통으로 써도 좋을 듯 하다. 

  책을 배치하는 서점원의 몫이 구매자에게 꽤 크게 깨달은 부분이다. 여기서 눈에 들어온 책은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이 두 권의 책이다. 그래서 들여다 보았는데, 왠걸 전에 구입해 읽었던 '저, 죄송한데요'가 떡하니 있는 것이다. 마치 '저, 죄송한데 우리 구면이잖아요.'하고 책이 말을 거는 듯 했다. 이렇게 눈에 안 띌 수 있다니, 아마 옆에 있는 책들의 제목이 이미 눈길을 사로잡아서 작은 글씨의 책이 안보였던 것 같다. 이 책은 '소심한 책방'에서 산 책인데, 기억으로는 저 책이 수록 된 민음사의 산문집이 쭉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하나씩 제목을 읽어보다가 당돌한 제목이라 구매한 책이었다. 그 당시 막 제주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때라 괜한 반항기 있는 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만춘서점에서도 사고 싶어 꺼내본 책들이 많다. 하지만 '저, 죄송한데요'는 아니었다. 똑같은 책인데 어떤 책방에서는 눈에 들어오고 어떤 책방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어디에 어떤 책을 놓느냐.' '어떤 시기에 어떤 책을 놓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또 한 번 생각해보면 이 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가 '책' 혼자의 탓이 아니라는 거다. 서점을 차린다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책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책을 고르고 밖에 나왔다. 만춘서점의 특이하고 좋은 점은 바로 앞에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다. 커피나 별 다른 걸 팔지 않고 있는 걸 보니 오로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마련한 듯 하다. 안에도 혼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의자 하나가 위 사진의 넓은 창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책만 놔도 모자를 수 있는데, 방문자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두 권의 책을 샀다. 만춘서점의 선택을 받고, 또 한 번 선택을 받은 소중한 책들. 


만춘서점

제주도 함덕의 작은 책방


제주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 9


매일 11:00~19:00
목요일 휴무

금, 토요일 11:00~21:00


blog:  http://blog.naver.com/bookopen01


instagram : @manchu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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