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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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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y 19. 2017

 책으로 커피를 만드는 곳
<유람위드북스>

제주 책방 6



여기 카페인가요?

  유람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새로 온 손님이 묻는다. 그 손님은 카페라는 말을 듣더니 음료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한 번 앉으면 오래동안 머물고 싶은 카페가 있다. 내 경우 책이 있는 카페가 그렇다. 대부분의 카페가 책을 비치해놓긴 한다. 하지만 한 두권 뽑아서 읽다보면 읽을 책이 동난다. 커피는 책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할 때쯤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책이 가득한 카페를 여는 게 꿈이었다. 둘 다 과거형이다. 카페 일에 소질이 없어 책만 남겼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이제 내 꿈은 서점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거다. 북카페를 꿈 꿨을 때, 비판적인 시각으로 북카페를 바라보는 것에 놀랐다. 책을 장식품으로 소모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라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과정의 값을 받는 서점에 애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이 있어 그 공간이 완성되는 곳이 있다. <유람위드북스>를 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유람위드북스>는 제주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추천을 받은 곳이다. 맛있는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곳에서 맛집도 아니고 해변도 아닌 북카페를 추천 받으니 참 새로웠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책방 지도'에서도 유람이 소개된 걸 볼 수 있었다.

  추천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살고 있는 곳에서 거리가 꽤 되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는 날 아침까지도 다음으로 미루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어 출발을 했다. 협재까지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내려, 밥을 먹고 맥주도 한 잔 했다. 남은 맥주를 보며 이걸 마시면서 가면 남은 거리를 걸어가도 좋을 거 같다는 패기 넘치는 생각이 들었고 샌들을 신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걷는 즐거움도 있었으나 그 피로감 때문에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유람이 내가 사는 곳 바로 앞에 있었더라면, 정말 매번 들렸을 것이다. 그곳에는 매일 읽어도 다 못 읽은 많고 다양한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람은 책으로 커피를 만드나 보다.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책과 함께 하는 구경은 끝이 없다. 책과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책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도, 소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유람은 단순히 책을 소모품으로 쓰지 않는 곳으로 보였다.         


숨 막히는 책방 지기 람이, 월.목.금 정기 출근

  걷다 걷다 마주친 유람이 반가웠고, 수요일인데 책방 앞을 지키고 있는 람이도 더욱 반가웠다. 들어가고 나니 제주에서 잠시 일했던 카페의 사장님이 서 계셨다. 람이도 반가운데, 또 반가운 사람이 나타나는 걸 보니 유람은 내게 좋은 기운을 주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의 반려묘 '람이'는 월/목/금 주 3일을 출근 하는 유람의 책방 지기다. 고양이가 있는 카페나 서점을 들어가면, 혹여나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선듯 다가가지 못한다. 다행히도 람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듯 했다. 사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이름을 부르며 주먹을 갖다댔더니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비비며 금세 드러누었다. 그동안 유람에 온 많은 사람들이 람이를 소중히 여겼는지, 람이도 낯선 사람을 소중히 대해주었다.

고양이 관련 서적

  람이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고양이와 관련된 서적도 눈에 띄였다. 장르별로, 또 주제별로 나눠져 있는 책장은 여는 도서관 못지 않게 책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만화방을 연상시키는 유람의 만화 코너

  내가 다니는 대학의 과는 만화책과 인문 도서들이 있는 아카이브가 있다. 신입생 때 그곳을 보고 대학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에는 소설이나 인문서 외에도 만화 역시 많이 비치되어 있다. 만화책이 가득한 공간을 보며 잠시 잊고 있던 학교가 떠올랐고, 유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허락해주는 한 언제까지고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음료에 책을 읽는 시간이 포함된 가격이라며 편하게 자리를 제공해주는 사장님의 배려가 이곳의 분위기를 만드는 듯 했다. 평일에는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여서, 오래 있고 싶었지만 조수리의 막차 시간은 이른 저녁이라 빨리 나와야하는 게 아쉬웠다. 이날은 심야 책방이 열리는 날이라 밤 11시까지 카페가 열려 있는 날이어서 더 아쉬움이 컸다. 제주없는사람은 8시에 문을 닫을 예정인데, 가끔은 심야 시간까지 여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3차는 서점을 추천한다.

책을 읽기 좋은 공간들


유람에서 만난 책들 

작은 가게 vol.1 with, 미호 출판사

rove magazine 006 책방유랑, 채비

모든 시도는 따듯할 수밖에, 이내, 소소문고x호랑이출판사

염리동의 여행 책방 <일단멈춤>이 소개된 '작은 가게'
여러 책방들의 인터뷰를 담은 고마운 매거진 로브rove


  유람에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걸 집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 딱 눈길이 멈췄다.


  모든 시도는 따듯할 수밖에

  힘이 되는 말 중에서는 가끔 무책임한 말들이 꽤 있다. 응원은 하지만, 책임질 수 없는 응원들. 물론 내 일을 그들에게 책임지라는 말은 아니다. 응원은 감사하나, 그 말만 믿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차갑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래도 모든 시도는 따듯하다는 작가의 말이 좋았다. 그리고 작가 본인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책임한 응원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나도 그가 말하는 '동지'였으면 한다.



  유람을 추천해준 이가 내게 '집 앞에 있었으면 매일 가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몰랐다. 제주도에는 예쁜 카페들이 많지만, 그래서인지 큰 감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람을 나오면서, 나도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바다를 바라보지는 못하지만, 책은 내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바다를 잊게 했다. 책방을 나오면서 막차가 6시 58분인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 마을까지 오게하는 책방의 힘이 참 대단하다고. 어쩌면 책을 주로 사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학교 앞에 책방을 내고 싶은 내 바람은 그들이 책을 가까운 곳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저 쉬운 방법으로 다가가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학생이라 큰 돈은 쓰지 못해도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발견하면 선뜻 지갑을 열지 않을까 하는 바람 말이다. 아직 오픈도 안한 서점이지만, 그래서 그 시도에 따르는 생각이 많다. 아무쪼록 유람처럼 자주 가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책방을 차리는 날이 왔으며 좋겠다.


유람위드북스

이 곳에서 책 한권과 마주하는 시간도 당신에겐, 여행


제주 제주시 한경면 홍수암로 561


연중무휴, 10:00 ~ 20:00 

매주 토요일 심야책방, 10:00 ~ 23:00

로스팅&심야책방 (수시공지) 

람이, 월.목.금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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