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는
알로하 서재에 처음 들린 날, 언제 쉴지 모르는 제주의 상점들은 꼭 휴무일을 확인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갔다가 허탕을 쳤다. 그 날 이후로 대부분의 서점들이 sns로 휴무일과 소식을 걸 알고 소식을 받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로하 서재가 서울의 조용한 식탁과 하루 콜라보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점에서 먹는 한 끼라니, 신선한 조합이다. 게다가 제주의 서점에서 서울의 레스토랑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새로운 일이라 고민하지 않고 예약을 신청했다.
예약을 신청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제주에서 하루가 참 빠르다. 오후 4시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알로하 서재로 갔다.
'타페나드 소스를 바른 흑돼지 수육과 버섯 피클' 정직한 이름의 요리와 스파클링 와인을 주문했다. 쉐프님은 요리를, 서점 주인분은 와인을 따라주셨다. 요리 이름을 적으면서 저 소스의 이름이 타페나드란 걸 알았다. 제주도 고깃집에서 흔히 나오는 멜젓과 비슷한 맛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수육을 김장 김치가 아닌 와인과 함께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쉐프님은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서점 주인인 두 부부는 첫 손님이자 혼자 온 내가 뻘쭘하지 않게 가끔씩 말을 걸어주셨다. 나가는 길에는 사진 작가인 쉐프님의 여자 친구분이 서점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음식점이 아닌 곳에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거라, 또 혼자 가는 거라 기대가 되는 한 편 긴장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맛있는 음식만큼 편한 분위기에 한 끼 식사였다.
서점은 완벽히 식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크지 않은 공간이라 원래는 책이 어떻게 비치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서점일 때는 아예 다른 분위기라는데, 다음 방문이 기대가 된다.
책장에 책이 있었지만, 그 날은 책을 판매하는 날이 아니었다. 알로하 서재는 월, 화 일주일에 이틀을 쉰다. 서점 말고도 '알로하 스테이'라는 숙박을 함께 운영해 이틀을 쉰다고 한다. 이 날은 서점이 쉬는 월요일이었는데, 쉬는 날이 늘어난 대신에 이렇게 색다른 이벤트가 있어 크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날, 유일하게 판매한 한 권의 책. 내 사진을 찍어준 작가님이 쓰신 책이다. 하루동안 식당을 한다고 해서 서점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서점에서 한 권의 책만 파는 날도 있다.
전에 협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은 적이 있다. 지금보니 그 게스트 하우스와 알로하 서재는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행에 가서 서점에 들릴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이제는 제주에 머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에는 육지 내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인데 각 지역에 갈 만한 책방을 봐 두었다. 처음 제주에서 책방을 갈 생각을 했을 때는, '온 김에 한 번 들려볼까?'하는 마음이었다. 라이킷에서 서점 관련 서적을 구입해 본 뒤로는 서점을 차리고 싶고 '서점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자.'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로 제주에서 만난 책방들은 다 저마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알로하 서재의 한 끼 식사도 Bar가 구비되어 있는 서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색다른 시도라 생각한다. 제주없는사람에서는 어떤 재밌는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서점이라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아직 정해진 공간이 없기에 제약 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