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목소리

by 진진

연락은 하고 산다. 나누는 대화가 똑같다. 밥은 잘 챙겨먹느냐고 물으면 시켜먹거나 사 먹는다고 한다. 공부는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짧은 대화지만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에 기분이 들뜬다.

추억을 꼽으라면 쉽게 꼽을 수 있다. 손에 잡히는 게 몇 없다. 지난밤에는 부족한 추억에 원망으로 답했다. 그 탓을 그에게 돌렸다. 그를 닮아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러니 전화를 걸고 안부를 묻는 게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전화를 걸기 전, 어떤 이야기로 말문을 터야할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 한번 생각해본다. 늘 똑같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한 번 되뇌고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컬러링은 처량하기만 하고 음악이 끊기면 나는 준비했던 대화를 시작한다.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어색하게 떨어진 사이를 좁혀보려 어깨에 손을 올려본다. 작은 어깨와 맞닿은 투박한 두 손이 데면데면하다. 그래도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닮았다. 얼마 있지 않은 추억을 담은 사진이다. 바닷가에 가서 바다를 보던 때가 아마 가을이었을 테다. 전어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나는 한 점을 입에 넣고 제대로 씹지 못한 채 회를 뱉어냈다. 입안에 느껴지는 가시가 여린 입속을 괴롭혔다. 이제는 가을이 되면 전어를 찾는다. 잔가시와 함께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고소함이 별미다. 사시사철 가시 없이 잘 씹히는 회도 좋지만, 가을 한 철 맛 볼 수 있는 전어가 좋다.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게 있다. 아직도 그는 먼저 연락 하지 않고, 나는 때때로 그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나는 그의 감정을 읽지 못하지만, 그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내 기분을 읽고 나를 달랜다. 밥을 먹을 때 흐르는 적막은 여전하다. 그때 나는 그동안의 이야기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물음으로 정적을 깬다. 웃을 때 조금 비뚤어진 턱과 쌍꺼풀 없는 눈이 닮았다. 내 덩치는 점점 커 가는데, 그의 덩치는 점점 작아진다.

얼마 없는 추억이, 고요한 식사 시간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사실 그의 탓만은 아니었다. 누구의 탓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안다.

준비했던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쳐있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말했다. 그 물음이 나를 달래주었다. 이제껏 놓치고 있던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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