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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pr 02. 2019

일간 이슬아를 구독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헤엄출판사>

# 다섯 번째 감상글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헤엄 출판사/ 생산적 헛소리에서 구매

내용한줄: 아직 읽고 읽는 중. 매일을 아슬아슬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타인의 이야기.

마음한줄: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그에게 반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슬아의 책을 구입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살 때 애써 외면했는데, 결국 집어들었다. 뭐가 잘나서 이 책을 외면했을까. 이 책은 뭐가 잘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걸까?  600 페이지에 다다르는 압도적인 분량으로 압축된 누군가의 인생을 읽어나간다는 게,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슬아 작가는 자꾸 눈에 밟혔다. 그는 매일 글을 연재하는 연재 노동자로 자신의 글을 구독한 구독자들에게 주말을 제외한 평일 동안 메일로 글을 보냈다. 그 글을 모은 게 바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다.


  나는 이제 그가 살았던 고작 두 달의 세월을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간 이슬아를 구독했다. 짜릿하다. 이제 조금 더 날것의(?) 이슬아의 글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프롤로그 같은 글이 메일로 왔다. 그는 작년과 달리 올 해는 수필로 보내드린다고 광고하지 않았다며, 미리 경고했다. 당연히 수필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바라던대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 건가? 수필과 소설의 사이라니. 하긴, 수필을 매일 연재한다면 그의 잘 다듬어진 일기장을 매일 보는 것과 다름 없는데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겨내고 매일 써낸 작가가 참 대단하다. 그를 알아갈 수록 조금씩 그에게 반하고 있다. 그리고 명백히 그가 나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역할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은 나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한없이 부럽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가까워지면, 나만이 저이를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재밌는 건, 책에는 생략된 그의 지인들이 쓴 수필도 무지 궁금하다는 거다. 이쯤되면 누군가의 매일을 읽고 있는 게 그가 쓴 글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재밌어서 인지 조금 헷갈린다.



p312 내 재능은 '쓰기'보다는 '쓰고 싶게 하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훌륭한 사람들을 따라하고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는 요조가 이슬아와 비슷해져가는 걸 욕하지 말아달라는 것처럼 오늘부터 나도 매일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한 달 간은, 매일 써야지. 정말 쓸 게 없는 날이면 이슬아 작가가 보낸 메일의 답장이라도 써 봐야겠다. 매력적인 사람!


p38
  뭔가를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가능성에도 성실해진다.
p42
  왜 좋아하는 사람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조금 슬퍼지는 걸까. 과거로 가서 걔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과거도 감히 사랑하고 싶어진다.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무방비상태니까. 성장은 대부분 타의로 이루어지니까. 누군가에게나 있을 유년기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p73 
  할머니가 기침 없이 목소리를 내는 때는 두 가지 경우이다. 남 얘기를 할 때. 노래를 부를 때. 그녀가 남의 언어를 빌리는 순간 나는 이제 더욱 유심히 듣게 된다.
 p103
  하지만 나는 영영 나다.
  꿈을 꾸면서 자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 날도 있지만, 너무 나다운 꿈을 꿔서 민망한 날이 더 많다. 나란 사람은 꿈도 고작 이런 것을 꾸는구나, 생각하며 잠에서 깨는 것이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
  그 사실이 지겨워 죽겠을 때가 있다.
p116-117
  우리는 각자 고유하고 무수히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같은 얼굴을 발견하기란 오히려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얼굴이든 그래서 조금 생소할 것이다. 그 얼굴들이 가진 생소한 아름다움을 늦지 않게 알아채는 연습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고 싶다.
 p229
  물 위를 향해 수직으로 뻗은 기둥을 차근차근 올라오는 그를 나는 그저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기도하듯 양 손을 모으며 육지로 올라오는 그의 마음을 다 알기가 두렵다.
p246
  복희의 품 안에서 자라고 그녀의 이웃으로 지내면서 나는 그녀로부터 온갖 종류의 행복의 모양을 배워왔다. 행복인 줄 몰랐는데 행복이었던 것들도 있고 행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들도 있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많은 걸 행복과 감사로 여긴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p290
  댄스 교습소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남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신기하게도 그걸 하는 내내 나는 내가 너무 나 같았다. 어떻게 해도 나는 나구나. 이게 내 몸이구나. 내가 마음을 먹어야만 내 몸이 움직여지는구나.
p299
  언어가 잘 만나졌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말을 하지 않을 용기를. 어는 순간 아무 말 안 하고도 우리는 너무 괜찮을 수 있다. 가끔 사랑은 그런 침묵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기도 한다.
p340
  우리는 가족이어도 서로의 마음 속에 어떤 지옥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잘 지내는지,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은지 궁금해하면서도 다 물어보거나 다 말해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 긴 이야기를 하면 새삼 놀랄 뿐이었다. 그랬구나, 세상에, 그런 일이 너에게 있었구나, 하고 몇 발짝 늦게 알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을 다해 듣는대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p436
  이 미세한 차이를 알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 애들의 근거가 되는 디테일들. 그러나 계속 변하기도 하는 디테일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디테일들. 누군가를 계속 힘차게 살게 만드는 그 디테일들. 살과 피부와 머리카락과 음성과 이빨과 뺨과 정수리 냄새의 디테일들. 빼도 받고 못할 사랑의 근원들.
p462
  이 집에 올 때면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지극정성으로 아끼는 모습을 꼭 확인한다. 예전에 그는 화분을 아끼고 돌보는 것과 비슷한 손놀림으로 손주들을 만지고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내가 한참 속했던 곳이다.





낱낱의 기록 감상글 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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