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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un 04. 2019

이들의 로드무비는 정당방위

The End of the F***ing World, 2017

    오랜만에 그레이엄 콕슨의 <Walking All Day>를 듣고 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나와 다행이다. 영화였으면 한 번 들을 엔딩곡을 8번에 나눠 듣는다. 매 화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노래는 한 편 한 편 여운을 들이붓는다.


  넷플릭스 덕후는 아니지만 잠깐 발을 들여놓은 동안 최고의 작품을 꼽자면, 바로 이 노래가 나오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다. 넷플릭스 덕후는 아니어도 성장물 덕후인 나에게 소녀와 소년의 만남이 만든 성장 시너지는 한동안 OST를 들으며 그 분위기에 빠져 지내게 만들었다. 성장은 결핍으로부터 발생한다. 결핍은 그들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성장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 성장이 긍정적인 변화인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그들은 서로를 만났고 그로인해 변했다.


  가만히 누군가와 다르지 않게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났다.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향해서. 서로의 목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원한 건 같아 보인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로드무비다. 로드무비 볼 때 떠올리면 좋을 시 구절을 소개한다.


앞으로 갈 길에는 주유소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

기름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다음 주유소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여기서 부터다

주유소가 안 나오면

꽃의 피로 가야지,

못 박힌 자리에서 쏟아지는 피,

오른편 심장 하나 구하려고 배롱나무 꽃그늘에


- 김승희, <오른편 심장 하나 주세요> 부분


    앨리슨과 제임스가 영영 도망치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행복해지길 바라지만, 그들에게 다음 주유소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위태로운 그들을 위태롭게 응원한다. 그럼에도 위태롭다. 그저 중2병스러운 우울한 감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떠나지 못하는 철든 어른과 떠날 수밖에 없어 떠나는 중2를 비교하자면 나는아직 중2이고 싶다. 떠날 때, 도망칠 때 우리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비록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언가가 흐려지더라도 새로운 나를, 함께라면 새로운 너를 발견하게 된다. 떠나지 않았으면 모를 그들의 모습을 로드무비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싸이코패스인지, 냉혈한인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추측하지 않아야한다. 드라마의 내용이든, 오늘 새로 본 누군가든, 익숙히 알고지냈던 그 사람이든 그 누구도 쉽게 추측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화 역시 모든 걸 쉽게 추측할 수 없게 끝난다. 결말마저 위태롭다. 어떤 교훈을 주며 매듭짓지 않아 좋다. 부디 시즌 2가 이 여운을 이어나가길 바라며, 어서 주인공들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 


마지막은 이 드라마로 좋아진 두 배우의 내츄럴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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