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주는 힘

가축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말라잖아요

by 김이나

나는 친가, 외가 모두 시골인데

어렸을적을 기억해보면 친가 시골집에 소를 키운 기억이 있다.

외양간이 집이랑 상당히 가까워서 제일 끝방인 오빠방에 누워있으면 가끔 바람이 불때 소똥 냄새가 나곤 했다.

큰아빠는 소에게는 이름을 지어주는게 아니랬다.

가축은, 즉 팔아야 하는 가축에게는 이름을 지어주는게 아니랬는데

그땐 이유를 잘 설명해주시지 않을것 같다.

추측하기로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순간 아무리 가축이여도 정이 들기때문이 아닐까?


반려견 이름이 먹는 음식인 사람들 (예를들어 호두, 두부 등)은

그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이름이였던 음식은 못먹는다고한다.

너무 그리워서


이름이 주는 힘이 이런건가 싶다.


나도 요즘 이름이 주는 어떤 에너지 같은걸 느낀다.


첫째아이를 낳고 조리원 동기 언니들이 몇 생겼는데,

우리는 'OO이 엄마'가 아니라 '김이나, 김철수, 박영희' 와 같이

우리의 실명(?)으로 처음 통성명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있다.

조리원이 특성상, 방 앞에 '김이나님 (찰떡이)' 이런식으로 명패가 붙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언니들 이름을 먼저 알게되었고,

지금도 언니들 이름을 부르고 지내고있다.

물론 언니들도 나를 '이나' 라고 불러주고, OO엄마 라고는 잘 부르지 않는다.


둘째를 낳고,

안하던짓2에 올린것 처럼 동네 육아모임에 가입하게되었는데

오픈채팅방의 특성상 내 실명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기이름/성별/생일/엄마년생' 으로 정한 닉네임 규칙을 따라 오픈채팅방에 입장하게되는데

그 순간 나는 'OO엄마' 'OO맘' 으로 불리게된다.

엄마년생을 왜 마지막에 넣게 규칙을 정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그걸보고 나보다 어린엄마들, 동년배엄마들, 언니인 엄마들을 구분할수는 있지만

그것을 보고 호칭하지는 않는다.


동네 육아모임에서 두번째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서 나가봤다.

역시나 오프라인에서도 'OO맘' 으로 서로 불렀고,

대충 이사람이 나보다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알지만 절대 언니, 동생하지는 않았다.


뭔가 훅 친해질수 없는 벽이 느껴졌고, 답답했다.

내 이름을 누가 불러줬으면 좋겠고, 나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더 가깝게 교제하고 싶었는데

계속 '누구엄마~ 누구엄마~' 하니까,

뭐랄까 예전 응답하라 1994시절에 나오는 동네 아줌마 (혹은 새댁?) 을 부르는 느낌이고

이름을 서로 공개하지 않으니,

결국 '아이말고, 당신은 그 자체로 어떤 사람인지' 묻고 마음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첫째의 인연으로 시작된 조리원언니들과는

언니들이 원래 사회에서는 뭐하던 사람인지,

남편은 뭐하는사람인지, 시댁은 어디고 친정은 어디며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고민은 무엇인지 소상이 알게 되었는데

이름조차 공유하지 않는 동네 육아모임에서는 영 어려운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관계가 편할 수 있지만,

나는 그래도 더 가깝게 알고 싶었다.

몇개월짜리 누구를 키우는 엄마가 아니라,

당신 그 자체로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당신 그 자체로 지금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했고

내 삶도 나누고 싶었다.


아직 두번째 오프라인 모임이라, 다들 서먹하고 어색해서 그렇겠지?

앞으로는 단체모임 말고, 한두명씩 소규모로 깊게 만나면서 알아보고싶다.

그러면서 진짜 나랑 마음맞는 동네 친구 짝꿍을 찾으면 럭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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