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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까 해.

What?

 어느 날 남편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까 한다고 얘기합니다. 온라인 세상에 어두운 아내를 위해 유튜브와 관계되는 동영상과 관련 책들을 보여주며 유튜브에 대한 내용들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남편의 직장 생활은 녹록지가 않습니다. 야근이 많은 편이었고 그로 인해 잠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떼어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얘기를 듣다 "해봐요. 잘할 것 같아요."라고 겁도 없이 말합니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유튜브 채널을 설명해주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예전의 그의 모습이 오롯이 다가오더라고요.


 남편이 저와 결혼하기 위해 기다렸던 무수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편이 저와 결혼한 때는 남편이 처음 대시를 시작한 때부터 딱 십 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10년 만에 결혼으로 골인하는 모습을 보며 누구는 '인간승리'라고 말했고 남편 얘기에 하트가 뿅 뿅 하는 제 눈을 보며 친구는 '그는 역전의 귀제'라고 말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근 6년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제게 한결같이 구애를 했고, 남은 4년도 사귀는 동안 몇 번의 굵직한 이별통보를 받았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한 곳만 바라보던 그가 결혼하는 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의 시간을 살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제 앞에서 이 것 저 것 유튜브에 대해 말하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불현듯 그 십 년의 시간을 지나 결혼에 성공한 남편이 생각나며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보 될 것 같아요. 하세요."


 남편은 그 뒤로 밤잠, 새벽잠을 줄여가며 유튜브를 오픈(17년 6월)하고 구독자 '0'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옵니다. 여전히 야근도 많았고, 아이들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 작업을 했으니 야근 후 집에 돌아온 시간 씻고 새벽까지 작업을 하거나 큰 맘을 먹고 새벽을 깨워야만 가능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첫 번째 구독자가 됩니다. 돌아보니 몇 달 있으면 유튜브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 가는군요.



 캘리그래피로 에코백을 만들 기회가 있어서 '딸키 바TV 구독은 필수'를 적어 열혈팬 포스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가방은 늘 저희 집의 대표 가방입니다. 딸의 과학과제로 만든 종이 자동차에도 딸키바TV 로고가 등장합니다. 온 가족이 딸키 바 팬 모드입니다.


 '872'명  '926'명 하루하루 보내며 언제 천명이 될꼬 기다리던 날, 저는 마음으로 ‘딸아이 생일선물로 1000명이 되게 해 주세요.’ 읊조렸습니다. 그런데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로 봐서는 딱 그날은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딸아이 생일 선물처럼 구독자 1000명이 채워졌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저희 남편의 유튜브 채널 이름은 '딸키바TV'입니다. '딸 키우는 바보 아빠'의 줄임말이지요. 그 덕분에 세 딸에게는 자동으로 딸기, 키위, 바나나라는 별칭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딸키 바의 앞자를 따온 닉네임이지요. '딸키바TV'는 남편만의 채널이라기엔 초기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으로 시작했기에 우리 가족의 채널처럼 여겨졌었지요. 물론 저는 늘 숨어 있는 묘령의 여인이고요.^^ 아이들의 일상 채널로 시작해서 그랬던지 아이들도 마음이 많아 딸아이의 생일에 맞추어 1000명이 되어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요. (물론 지금은 아이들의 일상은 담지는 못하네요. 지금은 잠자리 동화 콘텐츠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기다리던 딸아이의 생일날 1000명이 되었습니다.(19년 8월 19일)


그 소식을 들은 딸들이 갑자기 바쁩니다. 5학년인 큰딸은 자신의 생일은 뒤로하고 3학년, 일곱 살인 두 동생을 진두지휘하여 아빠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엄마는 1도 관여하지 않고 구경꾼이 됩니다. (심지어 엄마는 구경꾼에서 나중에는 이래저래 끝이 안나는 준비과정에 재촉을 합니다. 그만하고 정리해랏!!!!!!!!)

점심쯤에 천명이 채워진 이후 아빠가 퇴근해 오실 때까지 딸들은 분주합니다. 그리고 아빠의 퇴근에 맞추어 현관문이 열리는 입구부터 거실까지 꽃길을 만들어 놓고 모두 깜 감하 게 불을 끈 뒤 초로 불을 밝힙니다. (어디서 본 건 많습니다.ㅋㅋ) 그리고 축하카드와 풍선으로 아빠를 맞이합니다.



 많은 구독자는 아니지만 마니아 층이 되어, 올라오는 동화를 기다리는 어린이와 어른이들 모두 너무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물론 기다리는 것 만치 자주 올리지 못해 아직 거북이의 걸음이지만 거북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남편은 동화원고를 각색하고 아재 개그를 붙여 녹음을 하고 편집을 끝내 동화를 올립니다. 그렇게 동화를 오픈하는 날은 저희 가정도 모두 같이 불을 끄고 쪼르르 누워 동화를 듣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아빠의 애드리브를 따라 하기도 하며 약간 흥분 모드로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순간 잠자리 동화가 어둠 속 광분 동화가 됩니다. 요즘은 지인의 부탁으로 회사일 말고도 하고 있는 일이 생겨 동화를 못 올린 지가 어~언 몇 개월이 되어가네요.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동화작가가 따로 없습니다. 나름 원작에 창의력을 더한 각색을 하느라 고심하는 모습을 보면 브런치의 글을 올리는 나나 남편이나 모습만은 대단한 글쟁이들의 포스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남편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동화 언제 올려주시나요? 아이가 너무 기다려요."

"동화 듣다 스르르 잠든 아이 덕분에 육퇴 합니다."

"저희 아이가 딸키바TV 너무 좋아해요 00사는 000이 이름 불러주세요"

"20살 갓 넘은 성인인데요 어릴 때 잠자다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많았어요. 지금은 건강해서 그럴 일은 없지만 밤에 혼자 자는 게 너무너무 무섭더라고요. 또 갑자기 실려 갈까 봐요. 그래서 어릴 때 엄마가 동화 읽어 주고 노래도 불러 주었던 기억이 나서 유튜브를 찾다가 이 채널을 찾게 되었어요. 이주일 전부터는 동화를 듣다가 동화 결말도 다 듣지 못한 채 잠드는 일이 잦았답니다. 딸키바 아빠 덕분에 잠도 잘 자고 있어요. 사소한 거지만 저한테는 정말 은인 같은 분이고 은인 같은 채널이에요."

라며 댓글들을 보면 느린 걸음이라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남편이 올린 자장가들 몇 개에도 소중한 댓글들이 있습니다.

"약 먹어도 낫지 않았던 불면증이 싹 나아서 저를 맡고 있는 담당 선생님께서도 딸키바님께 고맙데요"

"잠을 잘 못 자서 문제였는데 자장가 덕분에 잠도 잘 오네요. 그동안 애먹었는데 쉼터가 생겼네요."

"울고 싶을 때 눈물이 안 나오면 꼭 들어요.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깨어나지 않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져요."    

너무나 감사한 글들입니다. 남편에게 자주는 못 올려도 소중하게 지켜나가라고 말하게 되네요. 사명감을 가지고 하라고요.ㅋ '00 공주'이야기를 각색하며 혼자 그다음은 어떻게 풀어가지 혼잣말을 하던 남편이 드디어 다 썼다며 좋아하네요.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남편처럼 소소한 삶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을 내는 모든 빛들을 응원합니다.

별빛이든, 달빛이든, 태양의 빛이든 모든 빛은 각자만의 색과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당신의 줄인 잠이 아이들의 단잠이 되기를

당신의 원고를 써 내려가며 행복해하는 그 행복감이 아이들에게 행복으로 닿기를

그리고 그 아이들 안에, 그 가정 안에 평안이라는 선물로 도착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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