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딸! 감성주의가 아니라 실리주의였어?

초등 4학년 딸아이의 공개수업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에요. 이 날은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엄마가 학교에 가는 몇 안 되는 날이지요. 학교에 도착해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요. 엄마들이 다 그렇듯이 내 아이의 모습부터 찾게 되지요. 우리 아이 자리를 파악하고 되도록 내 아이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습니다. 아이들과 각각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빼놓지 않지요. 딸도 뒤를 돌아본 뒤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와 눈인사를 한 뒤 미소를 지어주어요.

     

 공개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2교시가 되자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을 나누어 주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희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자! 여행을 가기 전 너희는 배에 딱 열 가지 물건만 실을 수가 있어. 그리고 함께 갈 사람을 열 명의 사람을 태울 수가 있지. 자 선생님이 시간을 줄게. 잘 생각하고 선생님이 나누어 준 종이 위에 써봐.” 아이들은 선생님의 내주신 미션을 생각하며 신이 나서 여행 계획을 세워갑니다. “너 나 태웠어?”하며 농담도 주고받지요.

      

 선생님의 미션이 어떻게 진행될지 감 잡으셨나요? 맞아요. 한 번쯤은 다들 해 보셨을 것 같아요.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배 안의 물건의 가짓수를 줄여야 하고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이건 꼭 없어도 되겠다.” “난 이걸 뺄래.” “으아! 내 소중한 게임기” 정도였다면 사람의 수를 줄여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아이들은 많은 사람과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어요. 미션이 반복되며 마지막으로 단 두 사람을 남겨야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딸도 엄마, 아빠를 남겼어요. 딸은 엄마, 아빠를 남기는데도 표정이 심각했어요. 동생들을 다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최종 관문 단 한 사람을 남겨야 해요. 술렁술렁하던 분위기도 고심이 깊어지니 조용해집니다. 그런데 조용함을 넘어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럴 수가 딸!!! 우리 딸인 거?!’


 딸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요. 그런 딸을 보며 ‘픽’하고 속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지혜로우신 선생님께서 딸도 위로해 주시고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진지하게 임하는 게 맞아. 충분히 이럴 수 있어.”라며 공감해 주시며 상황을 진행해 주셨어요. 딸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지만 결국 단 한 명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예상외의 그녀의 답! 그녀가 남긴 한 사람은 바로바로 ‘아빠’였어요. 거의 친구들은 엄마를 남겼는데 아빠를 남긴 딸!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도리어 좋았어요. 마음속으로 ‘두 부녀가 얼마나 사이가 애틋하고 좋다는 뜻이야’하며 흡족해합니다.' 그러면서 ’역시 난 마음이 넓은 엄마야‘ 하며 스스로 만족해하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심오한 마음이 숨겨 있을 것 같아 딸아이의 생각도 궁금해졌지요.

       

 아이들은 남은 수업들을 하고 부모님들은 공개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 남편에게 이 흐뭇한 소식을 알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딸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어요.


 “왔어? 오늘 공개수업 때 서은이 멋지더라 발표도 잘하고 서은이 생각들도 참 기발하더라.” 칭찬부터 늘어놓습니다. 뭘 쫌 아는 엄마이니 하며 칭찬을 늘어놓은 뒤 눈물을 터트린 일을 넌지시 묻습니다. 많이 마음 아팠냐고 묻습니다. 딸아이가 정을 떼기 얼마나 힘들어하는 성품인지 충분히 알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부터 묻습니다. 3학년 초 정든 초등학교를 떠나 새 학교에 전학 와 옛 친구들 꿈을 꾸거나 교정의 꿈을 꾸며 얼마나 가슴앓이를 한 줄 알기에, 슬픈 동화책을 읽으며 가슴 아파 펑펑 울기도 하는 감성 가득한 딸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질문만이 남겨져 있습니다. “엄마는 서은이가 아빠를 남겼는데 그만큼 아빠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좋았어.”라고 말합니다. 엄마는 서운치 않다는 마음을 전한 것이지요. 그리고 묻습니다. “그런데 왜 아빠를 선택했어?” 여전히 ‘엄마는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담은 온화하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딸이 말합니다. “아빠가 엄마보다는 아는 것이 더 많아 보여서.......”     


띠로리~~~~~!!!

순간 눈이 커지다가 ‘큭’하고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박장대소'하고 싶은 웃음을 속 웃음으로 웃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딸! 너 감성주의가 아니고 실리주의였어?!?!'

'많이 마음 아팠겠다. 이리 감성주의여서 어쩌누' 이 모든 생각은 엄마의 기우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실리주의였습니다. ㅎㅎ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