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친구를 데려왔어요. 몽골 친구 후슬랭입니다.
몇 달 전 막내가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을 내려놓더니 외쳤어요. "엄마! 몽골 친구 후슬랭이 있는데 집을 잘 못 찾아갈까 봐 걱정이 돼. 엄마, 내가 쫓아가 집에 잘 들어가는지 보고 올게." 그리곤 가방을 던져놓고 뛰쳐나가려고 해요. 딸을 급하게 불러 세워 물어요.
"서이야! 친구 집 알아?"
"모르지.... 그니까 얼른 쫓아가야 해."
"서이야! 후슬랭 집 들어가는 거 보고 서이가 우리 집 못 찾아오겠다. 친구 집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데 거기가 어디인 줄 알고 쫓아가." 하며 말렸어요.
선생님과 2학기 상담전화를 할 때도 서이가 후슬랭을 엄청 챙긴다고 하셨어요. 모르는 것도 서이가 옆에서 가르쳐 주고 하나하나 잘 챙겨준다고요. 그래서 서이 마음에 후슬랭이 얼만한지 알 것 같았어요.
막내는 성품이 저랑 많이 안 닮았다 생각했는데 아이의 모습이 어릴 적 제 모습과 닮아 있어서 신기했어요.
딸의 모습이 잊고 있던 어릴 적 제 모습과 엄마의 모습을 비춰 주어요.
어릴 적 고아원에 살고 있는 친구랑 친하게 지냈어요. 친구가 도시락을 혼자 먹으면 곧잘 같이 먹곤 했어요.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일하시느라 챙겨 오기 힘드신 엄마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와 주신 행복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공개수업 후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따로 부르셔 말씀하셨어요.
"경미야, 고아원 친구랑 친하게 지낸다며? 선생님이 걱정하시더라. 선생님이 엄마에게 주의를 주라고 하셨어. 그 친구 도둑질도 하고 안 좋은 친구라고 경미 네가 친하게 지낸다며 거리를 두라고 하셨다."
엄마에게 훈계를 듣고 있는데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도, 그 말을 전해 듣고 저를 가르치시는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 친구는 도벽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들이 몇 번 있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어린 제가 보기엔 친구가 필요한 아이였어요. 그리고 어린 마음에 그런 친구를 챙기는 것은 혼날 일이 아니라 여겨졌기에 엄마의 말에 "네"라고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던 생각이 나요.
저도 어른이 되었고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막내는 언니들이 가끔씩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모습을 참 부러워했어요. 막내는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노래를 했었지요. 그래서 "학교에 친한 친구 많잖아?"라고 물었더니 "그런 친구 말고 언니처럼 집에 놀러 오는 그런 친한 친구 같은 친구"라고 말했던 딸이에요. 그런 막내가 친한 친구 놀이를 하듯 자랑스럽게 친구를 데려온다 하여 그러라고 했어요. 서이가 집에 가끔씩 데리고 오는 두 친구가 있어요. 한 친구는 몽골 아이 후슬랭 또 한 친구는 베트남 엄마를 둔 친구였어요.
저도 정말 어른이 되었나 봐요. 처음엔 저도 무언가 편치만은 안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예전의 어린 경미가 '어른들의 생각은 왜 그러지?' 하며 홀로 뽀루뚱 했던 때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서이 친구 후슬랭을 두 번째 만났을 땐 저는 서이처럼 열린 마음을 준비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엄마도 후슬랭과 한참 놀아요. 한국에 온 지 2년 된 후슬랭은 엄마 아빠가 모두 몽골 분이신데도 한국말을 너무 잘해요. 너무 기특하고 부러워 계속 감탄을 해요.
"후슬랭 대단하다. 나도 몽골어 가르쳐줘. 몽골어로 인사말이 뭐야?" 물으니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가르쳐 주어요. 서이와 엄마는 열심히 따라 하는데 발음이 참 어설퍼요. 친구에게 이 인사말을 쓸 줄도 아냐 물으니 이렇게 써주었어요.
그런데 글씨가 그림처럼 예쁘지요? 아이가 써 놓은 글씨를 보고 있는데 감탄사가 마구 쏟아졌어요.
"후슬랭은 2개 국어를 하는 친구네! 곧 영어도 배울 건데 그럼 3개 국어! 후슬랭은 엄청 대단하다." 하니
벌써 영어도 조금 안다며 써주어요. 아이의 미소가, 예쁜 글씨가 너무 기특해요.
저는 좀 호기심 천국이에요. 아이에게 "전통음식을 소개해 달라"부터 여러 가지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어요. 여기서 잠깐 깜짝 퀴즈-몽골의 대표 음식이 무엇일까요? 친구가 가르쳐 주었어요. 바로 만두랍니다.^^
엄마는 몽골에서 의사이자 한국어 선생님이셨대요.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으니 "비밀"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요. 아이에게 배워요. 누군가의 질문이 난처하게 느껴질 때 비밀이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그분이 민망할까 봐 내가 난처하게 느끼는 질문에도 답을 하고 돌아와 후회하곤 했어요. '왜 그런 질문을 하지?' 하며 불쾌해하기도 했어요. 이제 후슬랭처럼 '비밀'이라 말해야겠어요. 참 좋은 말 '비밀' ㅎㅎ
아이에게 말해요. 이모가 원래 호기심 천국이니 앞으로도 이모 질문에 대답하기 싫은 건 비밀이라 말해달라고요.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요.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이모와의 대화에 후슬랭도 빠져든 것 같아요. 몽골보다 훨씬 살기 좋은 한국이라 해요. 학교도. 교육도.
"엄마 아빠가 후슬랭과 동생에게 더 좋은 환경을 선물해 주고 싶어 다 놓고 이곳에 와 더 힘든 일을 선택하셨구나." 하고 말하니 그렇다고 말해요. 그래서 둘이 외쳐요. 그런 엄마 아빠가 계셔 후슬랭은 더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거라고요. 딸이 옆에서 거들어요. "엄마! 후슬랭이 몽골어 한국어 하니 부럽구나? 후슬랭 엄청 똑똑해."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유연해요. 2년 전 이사가 아닌 이국을 한 후슬랭은 적응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요. 친구들도 좋고 학교도 좋다고요. 어쩌면 울타리가 되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울타리가 되기 위해 거친 것도 쳐내고 막아내며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기에 자녀들은 어디에 있든 '안녕'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구절처럼 후슬랭은 참 예쁜 친구네요. 자세히 보니 참 예쁘네요. 오래 보니 참 사랑스럽네요. 서이처럼 친구와 친해지는 시간 마음이 행복했어요.
곧 학교에 친구들을 만나 세계시민 다문화 특강을 진행할 건데 그 시간이 더 기다려지는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어른인 엄마는 여전히 아이에게서 배웁니다. 마음만큼은 늘 아이들을 닮아야겠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