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교사로 있을 때 재기 발랄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얼마나 ‘톡톡’ 튀는 대답을 하는지 볼 때마다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생각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상담전화 요청이 왔다. 아이가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아는데 책을 펴서 그림을 보고 엉뚱한 말로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혼을 냈더니 이제는 엄마가 못 듣게 소리를 낮추어 읽는데 가서 자세히 들어보면 스토리랑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알기 때문에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 한 아이의 이야기들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이의 모습이 엄마에게 왜 걱정거리로 비쳤을까? 엄마의 정형화되고 닫쳐진 사고는 아이의 풍성한 창의력을 다 담을 수가 없다. “너 한글 몰라? 여기 있는 글씨대로 읽어나가야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자꾸 그렇게 엉뚱하게 읽을래?”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엄마의 가리개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줄 모르나 엄마들이 범하는 정형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기준대로 아이를 담아 놓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정말 톡톡 튄다. 제 아무리 붙들어 놓으려고 해도 잠시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몸으로 뛰지 않으면 입으로라도 재잘재잘 표현해야 살 수 있는 존재가 아이들인 것 같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까지 해서 초등학생인 세 딸도 몸과 입이 쉬지 않는다. 장난을 치며 몸이 부산한 아이들에게 정신없다고 앉아서 숙제하라고 하고 나면 어느새 노랫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해진다. 4학년 수학책을 풀며 열창을 하는 둘째 딸에게 나도 모르게 “좀 조용히 해줘. 노래에 그렇게 집중하면 수학 문제가 안 풀려. 문제에 집중해.”라고 말했다. 수학에 집중도 집중이지만 엄마 귀가 쉬고 싶어 주문을 했는데 딸이 노래를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수학을 푸는 방법을 입으로 줄줄 생중계를 한다. 마치 수학강사 유튜브 채널 인양 “이번 문제는요. 이렇게 풀면 쉽지요?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요. 여러분에게만 알려 드리는 거예요.” 하며 입을 쉬지 못한다. 앞에 카메라가 있는 것 인양 문제를 설명하는 딸이 얼마나 신이 나서 문제를 풀던지 숙제가 엄청 빨리 끝났다고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몸이 책상에 고정되어 있으면 자신의 소리라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야 사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한 한 줄 인문학⟫의 김종원 작가도 이런 말을 한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다리로 하는 것이라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도 가만히 굳어 버리게 된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여기저기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할 때, “조용히 해, 가만히 좀 있어.”라고 다그치는 건, “그만 생각을 멈춰줘!”라고 외치며 아이의 창조성을 억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안 하기가 참 힘들다. 나 또한 그렇다. 아이들의 몸을 움직이는 시간들을 아이들의 뇌가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으로 기억한다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쉽게 내뱉는 “좀 가만히 좀 있어. 좀 조용히 좀 해”라는 말들이 아이들의 빛을 덮어버리는 가리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피부는 ‘제2의 뇌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부산하게 무언가를 만지고 뛰고 노래하는 시간은 아이들이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아이의 자존감, 믿음이 키운다⟫의 저자 홍미혜 작가는 첫 아이를 키우며 철저하게 훈련 모드였다고 한다. 공부를 계속해 왔던 엄마인 데다가 완벽주의 성향까지 가지고 있어서 내 아이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만큼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 아이이기를 바라다보니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받아쓰기 시험도 최선을 다해 연습을 시키고 수학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는 미리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며 준비하게 하고, 미술대회라면 미리 한 번 그려보게 한 후 참가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열성 엄마의 표본이었으며 욕심이 앞선 시행착오였다고 말한다.
아이 안에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빛을 덮는데 엄마의 욕심이 큰 역할을 한다. 아이 스스로 빛을 뿜을 새가 없이 엄마의 방법과 틀 속으로 아이를 가둔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두각을 나태 내기를 바라며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어느새 우리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고 한 가지 빛을 내라고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만의 고유한 빛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만의 재능의 다채로운 빛이 나오려고 하면 사회적 잣대를 들이민다. 지금 너 나이에는 이것을 해야 하고 하면서 아이에게 수행해야 할 일들과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들을 줄줄이 줄을 세운다.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이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 박사는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제기하여 교육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가드너는 지능에는 8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음악 지능, 신체 운동 지능, 논리수학 지능, 언어 지능, 공간 지능, 자연탐구 지능, 대인관계 지능, 그리고 자기 이해 지능이다. 다중지능 이론이 말하는 가장 큰 시사점은 인간의 지능은 단순히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여러 가지 많은 지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 이론에 근거하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장점과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하나만이 지능이라고 생각한다면 엄마가 세운 기준점을 채우지 못한 내 아이는 부족한 아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지능의 스펙트럼을 인정하고 바라봐 준다면 아이에게서 다채로운 빛이 뻗어나감을 볼 수 있다. 아이의 빛을 그대로 인정하면 엄마는 더 이상 선생의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 노신사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사님의 강연의 대부분의 내용은 잊었지만 이 것 하나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남편을 대하거나 육아를 할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 떠올리는 내용이다. 바로 ‘그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남편과의 대화에서 남편이 어렵게 꺼낸 회사의 일이나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입장이 아니라 상사의 입장에 서서 얘기를 하게 된다.
“당신 그런 일이 있어서 마음이 무겁고 속상했겠네.” 또는 “우리 남편이 어떤 사람인데 그 동료는 그러는 거야.” 하며 아내의 입장에서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일을 어떻게 했었어야 되는 것이 아니야 동료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지 않겠느냐 하며 상사의 위치에서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내겐 큰 교훈으로 다가와 육아를 할 때 자주 대뇌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엄마의 입장에 서서 얘기하고 있나?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모습으로 아이 앞에 서 있지 않나?' 하고 말이다.
아이에게 교사가 되지 말고 엄마가 되어야겠다. 아이에게 엄마로 존재하자. 엄마의 한자어인 '어미 모'는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는 여성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어미 모’의 상형문자가 나타내는 것처럼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포근한 품에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아기일 때는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아이를 품에 안고 먹이고 재우는 것이 큰 사명이 된다. 잘 먹고 잘 자는 아이 또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며 엄마에겐 더없이 사랑스럽고 기특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 어떠한가? 아이가 벌써 세, 네 살만 되어도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바라는 것들이 생긴다. 어느덧 아이들을 사랑거리로만 바라보지 못하고 자랑거리 삼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아이의 영특함이 큰 기쁨이 되어 과한 욕심들이 발동하는 것이다. 엄마 욕심은 아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을 가리는 가리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가리개 대신 넓은 엄마의 품을 항상 준비해 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