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책쓰려고
“여보 나 책 쓰려고.”남편에게 말하자 “써야지!” 남편의 반응이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긍정 반응을 해주는 남편 덕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가 길어진다. 남편이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한마디 한다. “당신이 책을 써야지. 가끔 욱할 때 빼고는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에 있겠어?” 이게 무슨 극찬이란 말인가? 이번엔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건넸다. 엄마가 육아서를 쓰려고 한다고 하자 6학년인 큰딸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래 엄마! 사람들이 나보고 어떻게 이렇게 바르고 똑똑하게 컸냐고 하는데 그 노하우를 다 써.”정말 영락없는 고슴도치 가족들이다. 누가 그 방법을 알면 나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말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 덕분에 마음이 든든했다. 역시 나의 든든한 지원군들이다.
나도 늘 아이들의 지원군이 되고 싶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6학년 딸아이는 엄마를 닮아 사람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호기심 천국이다. 거기에다 잡기에 능하다 보니 숙제도 깜박하고 책상 가득 공방을 차려 놓을 때가 있어 엄마의 언성을 산다. 필요한 소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작아진 옷부터 휴지심까지 아이의 서랍 안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한다. 딱 가지고 가서 재활용 통에 털어 넣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이것저것 채워 놓은 서랍 안처럼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딸은 늘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런 딸이 요즘 엄마보다 더 열심히 글을 쓴다. 글쓰기는 딸아이의 취미생활 1호가 되었다.
엄마가 책을 쓴다고 했을 때 큰 딸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한마디를 건넸다. 바로 “오! 그럼 우리 집에 작가 모녀 탄생하는 거야?”였다. 책을 좋아하는 딸은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엄마가 노트북을 가지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원고지에 쓰더니 그다음은 A4지에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노트북을 끼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가 너무 고픈 날은 이른 알람을 해 놓고 새벽 기상을 할 때도 있으니 정말 작가 포스이다.
한 번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종이를 찾는다. 자는 동안 다음 쓸 새로운 이야기가 꿈에 나왔다며 잊기 전에 써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강원국 저자도 평생에 두 번 자면서 완벽한 원고를 쓰고 깨어나서 그대로 적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딸아이가 사뭇 비슷한 모습으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심 부럽기도 하고 책 쓰기에 진심을 담고 있구나 싶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이 나면 잊지 않으려고 어둠 속에서도 끄적여 놓는 내 모습도 생각나 웃음이 났다.
딸아이가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이의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은근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역사 속 세기의 로맨스, 신화 속 사랑이야기 시리즈 등 사랑이야기 책에 빠지더니 로맨스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의 허풍선에도 바람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며 발을 동동거리기도 하고 숙제도 뒤로 하고 글을 쓰기도 하니 때로는 엄마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엄마가 무슨 이유로 막을 수 있을까? 책상 가득 글루건이나 기타 액세서리 도구들을 꺼내어 작업을 할 때도, 천들을 꺼내 옷을 디자인한다고 가위질을 하고 바느질을 할 때도 그 어는 것 하나 엄마의 취향이 아니라 해도 딸의 취미이자 아이의 세상이니 엄마는 할 말이 없다. 피아노를 두드리며 악보를 그려가는 딸에게 박자를 맞추어 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열심히 로맨스 소설을 쓰는 딸아이의 일등 독자가 되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딸의 손재주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하니 딸아이의 ‘나 홀로 공방’에 감탄사를 쏟는 바람잡이도 되어주고 있다. 엄마 지원군 출동이다. 딸이 엄마의 꿈 지원군 이듯이 말이다.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의 김종원 저자는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키워내려면 결국 수많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뭐든 시작해야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어떤 시작도 쉬운 것이 없고 기대와 현실이 서로를 괴롭히기 때문에 수많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이들은 이 모든 과정을 놀이라는 공간으로 가지고 와 경험해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간이란 말인가? 놀이로 가지고 와 다양하게 시도하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으니 아이의 세상도 존중받고 지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심취해서 놀아 본 경험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갈 때도 동일하게 작용하여 추진해 나갈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고 싶다.
김종원 저자의 '그 어떠한 시작도 쉬운 것이 없고 기대와 현실은 서로를 괴롭히기 때문에 수많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닐 것이다. 내게 책 쓰기도 이러한 도전이며, 앞으로 걸어 나갈 하나하나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원 작가는 내게 자격이 있을까라는 말은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에게는 저주의 언어가 되고 영원히 출발할 수 없게 만드는 말이라고 한다. 자격은 시작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 후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의 엉성해 보이는 그 모든 활동들이 아이들의 시작이 되고 그 모든 과정이 어떠한 모습으로 열매를 맺힐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마음껏 꿈을 꾸고 시작하고 시도하고 그 과정을 즐기면 된다. 이것은 내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살아가는 내게도 언텍트 시대는 큰 도전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을 지지하며 아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한 걸음씩 걸어가려 한다.
마음 사용법을 공부하러 가는 시간이나 슬슬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집을 비우는 일정들이 길어지자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엄마가 집에 없으면 싫다고 투정을 했다. 자신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계속되어 집에 있는데 엄마가 없으니 그 시간이 더 크게 부각된 것 같다. 부쩍 겁이 많아진 딸이 사정에 가깝게 엄마 안 가면 안 되냐고 했다. 그때 큰아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가 그동안 이만큼을 키워 주셨는데 엄마가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러도 못가. 그건 아니지. 그건 너무 한 거야. 엄마에게도 그런 시간은 필요해.” 라며 둘째에게 말했다. 내가 입을 뻥긋할 필요가 없었다. 딸들끼리 대화를 하고 정리를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어느덧 자란 딸들이 엄마의 걸음을 응원해 준다. 나는 용감하게 행복 가득 담아 나의 길을 걸어가 주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밀착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롤로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밥 세끼 챙기는 것, 장보는 것, 쌓이는 집안일이 벅차게 느껴졌고, 점점 시간이 길어지자 아이들도 나도 정신적 육체적 간격이 없이 늘 한 공간에서 함께 하다 보니 아이들도 불협화음이 나고, 나도 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의 자리로 가기를,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신기하다. 그 시간이 더 많이 길어지자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반전의 마음이 찾아왔다. 어느덧 내 마음에 아이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찼다. 갈아 넣은 시간만큼 진한 가족애가 솟는 시간처럼 다가왔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처음 마음과 비교하면 역전의 수준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할수록 아이들이 있기에 내가 성장함을 느낀다.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많이 자랐고 엄마의 꿈과 행복을 배례하는 모습이다.
삼 형제를 잘 키우고 손주들이 예쁘게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육아의 대선배이신 가수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여성학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박혜란 여성학자는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하신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게 된다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육아처럼 즐거운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하신다. 내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는 말씀이셨다. 우리 모두 육아 대선배의 말씀처럼 아이와 함께 꿈을 꾸고, 서로의 가장 든든한 꿈 지원가가 되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