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장진호 전투가 그렇게 내게로 왔다

2021년 겨울

 처음 아흔 어르신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2021년 10월 24일 내 생일날이었다. 뜻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 내 생일날 내게로 찾아왔다. 그래서 '이건 선물인가 보다' 생각했다. 유형의 선물을 건넬 수 없는 손길이 무형의 선물을 내 손에 담아 주는 선물 같았다.


 장진호 전투 학도병으로 역사의 흐름 가운데 생의 역사를 남기신 아흔 어르신의 삶은 내게는 너무나 숭고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난 그냥 그 모든 이야기를 팔을 벌려 안아야 되나 보다 생각했다. 역사도, 장진호 전투도 내게는 너무나 미지의 이야기였지만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11월 17일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르신이 약속을 잡고 싶어 하신다는 소식이었다. 귀가 많이 어두우시고 여러 상황도 봐야 하니 만남을 가지고 결정을 하라고 전해주셨다. 하지만 11월의 마지막 토요일로 약속을 잡고 그날을 기다리는 시간 나는 처음 마음 그대로 이 짧은 팔을 벌려 안을 수 있을 만큼 안아야 한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생일날 받은 전화에 이어서 몇 주 후에 최종 전화가 왔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전화가 올 것이고 난 약속 장소에 나갈 것이고 그리고 내게로 걸어오는 장진호 전투의 이야기를 밀쳐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약속 장소인 국립현충원으로 가기 위해 동작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걸어 나왔다. 전철역 안에 국립현충원이라는 안내표지판을 보면서부터 생일날 처음 전해받으며 느낀 숭고함이 입체감 있게 내게 다가와 내 손을 끌어당겼다.


 현충원 입구에서부터 '어떡하지'라는 속말을 되뇐다. 너무 무관심했어서, 너무 아무것도 몰라서 이 죄송한 마음을 어떡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에 현충원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이 가벼울 수 없다. 이곳에 묻히신 많은 분들을 뵈러 들어가는 걸음이 묵직하기만 하다.



 연결자가 되어주시고 나를 안내해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숲해설가님이자 작가님이신 장 작가님이 만남의 집 앞에서 나를 맞아주셨다. 일방통행으로만 갈 수가 있어 한 바퀴를 빙돌아야 위에 있는 사무실로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차로 태워 가셨다. 국립현충원 가까이 사셔서 이곳을 산책코스로 삼으시는 장 작가님은 차를 돌아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어느 위치에 누가 묻혀 있는지 설명을 해주셨다. 역사가 파란 하늘에 물줄기를 내며 지금도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전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꾸 푸른 하늘만 보게 된다.



 '이 작은 가슴에 내가 다 담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내 가슴은 어떻게든 잘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깊이깊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그렇게라도 마음 통의 사이즈를 키워 그 숭고하고 처절한 이야기를 담아야 할 것 같은지 내 가슴은 그렇게 깊이깊이 내려가 마음 통을 확장하고 있다.


 '전쟁과 역사와 너무나 안 친했던 나, 무관심했던 내가 달게 받을 벌이네.' 하며 피식 웃어보다 '호기심 천국에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인생 스토리 좋아하는 내게 딱이네.' 하며 위안 삼는다.  

 이렇게 소중한 이야기가 내게 똑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드디어 문을 연 내게 잘 부탁한다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내 작은 가슴에 다 품을 수 있도록 나도 잘 부탁한다고 내 마음을 실어본다.

 전쟁영화도 잘 못 보고 무서운 영화도 안 좋아하는 나는 어떤 사명감에 묵직하다. '어떻게 이 이야기가 내게로 왔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기에 내게로 왔지.' 생각은 쉬이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숭고함이 내 마음 안에 물들어 마음이 온통 하얗다.


 무식하면 원래 용감한 법이다. 이건 그냥 무식하게 용감하게 걸어갈 일이다. 처음 마음 그대로 두 팔을 벌려 와락 안아본다. 내게 생소한 장진호 전투와 6.25 관련 서적과 자료들이 내게 말을 건다. 알아봐 주겠냐고 기억해 주겠냐고. 잊고 있던 것이, 너무도 모르고 있던 것이 미안해 난 두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내 책상 위와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려고 한다. 함께 대장정의 길을 가기 위해.


 아흔 어르신이 나보다 전철 노선에 밝다. 당황스럽다. 다시 한번 길치에 방향치인 그래서 길 찾기가 세상 싫은 난, 또 한 번 어르신이 존경스럽다. 말씀하시는 것 모두 아흔의 시간을 아우라로 가지고 계셔 그냥 다 존경스럽다. 모든 것을 기억하시는 총기도, 안경도 안 쓰시고 글을 읽으시는 모습도, 비록 지팡이를 집고 계시지만 곧게 서서 걸으시는 모든 모습이 다 존경스럽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뒷자리에 앉으신 어르신은 계속 말씀하셨다.

"다 인연이네요. 인연이라 이렇게 만나지요."

그렇게 말씀하신 어르신은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시는지 "인연이지. 인연" 하며 혼잔말을 하신다.


 그런데 그런 어르신이 헤어질 때 길을 못 찾아가실까 염려되고,  지팡이를 의지해 가시는데 힘들진 않을까 살피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난 잘 가니 편히 가면 되지. 인연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런데 그렇게 맘을 쓰면 받는 람도 불편한 거지 난 알아서 잘 가면 돼요." 하신다.

인생에 지혜가 세월 속에 예리해져 덤덤히 뱉는 말마저도 가슴에 '훅'하고 파고든다.

묵직한 내 마음에 또 그리 말하는 것 같다. 다 스쳐 지나갈 것이니 너무 맘 쓰지 말라고.


 상담을 하는 내겐 공감능력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이 큰 강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감정 오지랖이 내 숙제이기도 하다. 마음의 주인 자리를 파고들어 소란을 부리려 한다. 그런 내게 어르신의 헤어지기 전 말씀이 여러 의미로 들렸다. 꼭 스쳐 지나가는 인생길에 또 하나의 바람처럼 내게 왔다 가는 것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이다. 나와 어르신의 장진호 전투 이야기.

파란 현충원의 하늘 아래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아이가 함께 꿈을 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