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저 하늘에 닿아 있다. 마음 따라 눈도 자주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파란 하늘에 날아 올라갈 것처럼 발이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괜실히 깡총깡총 뛰어다니게 만드는 가을이다. 그리고 가을과 어울리는 음악을 찾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음악은 시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른다. 가을은 내게 그런 계절이다.
5년 전 어느 날이었다. 이 날도 가을 하늘을 맘껏 느끼고 싶어 음악을 듣고 걷고 있는데 가수의 탁한 음색에서 맑은 영혼이 느껴졌다. '까칠한 나뭇결 같은 거친 음색에서 어떻게 이런 느낌을 전해오지?'라는 생각에 걸음이 멈추어졌다. 인상 깊은 느낌이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먹는 '아이 셔 캔디'같은 느낌이다. 달달한 사탕인 줄 알고 먹다가 사탕을 '탁' 깨물면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신맛이 터져 나온다. 너무 셔서 눈도 못 뜨면서, 사탕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그 반전의 맛을 즐기며 '아이 셔 캔디'를 찾곤 한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던 그날 탁한 가수의 음색은 완연한 가을빛이었다. 땅에는 마른 나뭇잎들이 가득 떨어져 짙은 갈색의 나무들이 몸을 드러내고 있는 나뭇결과 같은 음색 말이다.
그런데 그 음색에 매료되어 곡을 듣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청량감이 가슴 안으로 퍼지며 감동이 전해졌다.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반전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소리에서 영혼이 전해온다고 느꼈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소리에서 전해오는 느낌에 더 민감하게 된 것 같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노래를 잘한다는 평가를 떠나 감동과 여운을 전해오는 소리에서 영혼을 느낀다.
그날부터 한동안 카카오톡 프사 메인글에는 '탁한 음색에서 맑은 영혼이 느껴진다'라는 글귀를 올려놓았다.
소리라는 것은 바람이 성대를 걸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람이 헬라어로 영혼과 동의어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소리에서 영혼을 느끼는 거예요."
최근 듣게 된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들려주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공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창옥 교수님의 문장을 듣는 순간 깊이 공감하며 5년 전 노트에 써 놓았던 프사 글귀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나를 보여 주려고 색을 입힌다. 고운 화장으로 얼굴에 색을 입히기도 하고 멋스럽게 차려입은 스타일로 나의 색을 입히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나의 소품들, 내가 가진 직업,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색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영혼이 있기에 보이는 모든 색 너머의 것을 보는 것 같다. 소리에서 전해오는 영혼의 색이 때로는 더 투명하게 느껴지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나는 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 속에 사람이 담겨있다. 글 속에 영혼이 담겨있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이 머무르는 글이 있나 보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지만 마음이 자꾸만 가 어느덧 내 마음에 벗이 되는 글이 있다. 아주 짧은 글에서도 잠시 머물러 서 하늘을 보게 하는 글귀가 있다.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을 품게 하는 글이 있다. 글에서는 단 한 줄도 착하게 살아라 말하지 않고, 맑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는데 내 마음이 그런 메시지를 품어 잠들게 하는 글이 있다.
나의 글이 그러하기를.
책 출간 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아날로그가 적성인 사람이 디지털 세상을 알아가느라 허둥지둥할 때도 깊은 곳에서의 한 줄은 '글이 쓰고 싶다'였다. 글이 쓰고 싶다. 마음으로만 쓰고 공기 중으로 날려버리는 글들을 길어 담아가고 싶다. 글벗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