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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쓰는 편지

몸 편지를 읽게 되면 말보다 더 깊고 절절한 사랑을 만날 수 있다.

 

 결혼을 하기 전 남편에게 "다른 건 몰라도 때때마다 편지 선물은 꼭 주기. 손편지 좋아해요."라고 말했었다. "편지 잘 안 쓰는데" 자신 없어하던 남편은 결혼 초 선물과 함께 짧은 편지글을 보내왔다. 정확히 말하면 카드이다. 카드 안엔 정말 몇 자 안 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몇 자 안 되는 글에서 긴 글이 읽혀 진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아내를 위해 해준 것만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읽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불편한 일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을 때 그 몸짓이 바로 몇 장의 편지가 담긴 긴 사랑의 서사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이마저도 사라진 지가 한참 되었다. 그런데 크게 서운하거나 불편함이 없는 건 남편의 사랑 글이 삶에 녹아져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부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는 나는 아가씨 때처럼 편지를 차곡차곡 담은 상자도 그리 반갑지 않은 상자가 되어간다. 세 딸의 짐들도 한몫을 하니 엄마 또한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에 여유공간을 줄 여백이 없어진다. 그래서 남편의 종이에 담지 못하는 몸으로 쓰는 편지에 마음을 기울이고 만족하게 된다.

  



 

 신혼 초 남편하고 다투고 나면 '마음을 담은 화해의 편지 한 장 책상에 놓고 가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아날로그 아내는 시간이 지나니 화해의 맘을 담아 '내가 이런 부분은 미안해. 그런데 자기도 이런 부분은 안 해 주었음 해 라고 세심하게 말로 해주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차분히 대화를 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대신 남편은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했다. 처음엔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말을 해야지. 설거지를 하면 다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몸으로 쓰는 화해의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은 뒤로는 남편의 설거지하는 모습에서 남편의 화해의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또한 거리의 간격을 좁혀 가는 행동으로 답장을 건넨다.


 이제는 남편의 마음이 담긴 긴 편지도, 거창한 화해의 말도 그리 바라지 않는다. 물론 평소 대화가 많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아닌 몸짓으로 건네는 메지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견의 부딪침이 있거나 한쪽이 여유가 없어 예민한 말이 오가면 긴 말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보다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생겼다. 누구든 한 템포 멈추어 주면 감정의 곤두섬은 금세 끝난다. 멈춤의 행위 안에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한 템포 참을게요. 당신의 화가 가라앉길 기다립니다."라는 마음이 담긴 행동임을 이젠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배려의 몸짓임을 읽을 수가 있게 되었다.  


 아이의 엉덩이를 떡 반죽 주무르듯 주무르며 "아코 귀여워.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워."라고 말할 때가 많다. 물론 우리 집 막내 엉덩이만 엄마 맘대로다. 그런데 때로는 아이를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어 보일 때가 있다. 아이는 엄마의 미소 안에 담긴 긴 편지 글을 읽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나도 모르게 엄마보다 먼저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긴 편지를 마음으로 읊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의 최고의 선물임을, 오늘 짠하고 미안했던 일을,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임을 마음으로 말하고 또 말한다.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엄마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본 딸과 함께 눕지 못하고 뒤늦게 자는 딸을 쓰담듬으며 마음으로 사랑의 편지를 쓴다.





 그러다 보면 어릴 적 엄마의 투박한 손이 어둠 속에서 자는 나의 머리를 넘기던 순간이 떠오른다. 엄마는 나처럼 애교 많은 엄마도,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엄마도 아니셨다. 무뚝뚝 속정 깊은 엄마셨다. 그런 엄마가 새벽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나는 살짝 깼지만 깨지 않은 척을 했다. 낯선 모습에 모른 척 잠든 척을 하다 다시 깊이 잠들곤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어둠 속 딸의 얼굴을 쓰담는 엄마의 몸짓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담겨 있는지 엄마가 되고 난 지금에서야 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 안에 더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또한 말없는 몸짓 안에 그 어떤 작문의 글보다 더 긴 서사시가 담겨 있다. 몸으로 쓰는 편지를 읽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쩌면 말보다 더 깊고 절절한 사랑의 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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