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애도의 시간

나의 슬픔을 만나주자.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을 만나 집단상담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 반의 친구들을 나누어 10명 정도 모둠을 지어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의 마지막 날, 시간이 끝나갈 무렵 한 여자아이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프로그램 내내 위트 있는 농담도 잘하고 오픈되어 잘 나누어 주는 친구였다. 남자 친구들과도 털털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친구였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친구가 말했다. 4월에 엄마 아빠랑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 바다에서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만난 달이 5월이니 4월이면 바로 한 달 전에 있던 사고였던 것이다. 바로 한 달 전에 그렇게 큰 일을 겪고, 일상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그냥 지금은 자기가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엄마도 슬퍼하고 계시며 그냥 지내고 계시다고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이 얘기를 꺼낸 건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렇다며 친구들을 보며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한테 잘해 이것들아. 있을 때 정말 잘해.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라. 나중에 후회한다.”하며 웃었다. 몇 가지를 더 묻고 나누고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생각나고 보고 싶을 텐데 너무 힘들면 언제라도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때때마다 스스로 격려도 해주라고도 말했다. 아이가 모든 활동을 마치고 쓴 소감문이자 자기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에 ‘이제 살 길이 조금 보인다 살아보자’고 써놓았다. 그리고 ‘또 잊게 되면 이 걸 꺼내 읽자’고 쓰여 있었다. 


 그 친구를 생각하니 떠올르는 분이 계시다. 바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생상담자원 봉사자 연수기간에 강의를 해 주신 분이시다. 이분은 초등학교 3학년 추석날 엄마가 돌아가시는 큰 일을 겪게 되셨다. 너무 슬펐는데 장례식장에 문상 온 친척들과 사람들이 위로해준다고 전해주는 말들 때문에 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바로 “엄마 좋은 데 가셨으니까 울지 마.”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울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데 고2 올라가는 해 설날 전날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분은 명절이 정말 싫었다고 했다. 명절은 더 외롭고 추운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분은 갑자기 고아가 되고 보니 상황에 밀려 고2 때부터 독립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 끝나면 저녁엔 일을 하며 지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생활고는 계속되어 인생이 동굴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고 하셨다.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자식을 두고 간 부모에 대한 원망과 자기도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었다고 한다. 동굴 같은 시기를 보내며 그해 말 첫 자살시도를 하셨다. 고향의 강가에 가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차마 죽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 후로도 사는 게 너무 힘들 때도 자신은 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안 운 게 아니라 못 울었다고. 내가 울면 우리 엄마 아빠 좋은데 못 갈까 봐라는 두려움으로 한 번도 제대로 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분에게 23살에 찾아온 병이 있었는데 바로 우울증이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다 회복하고 싶어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 선생님께서 진단하시기를 슬픔을 억압해서 생겨 난 마음의 병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 이미 좋은 데 가셔서 편안하게 잘 계셔. 너 울어도 돼. 괜찮아.”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엉엉 울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셨다고 했다. 그 경험을 통해 제대로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에 이렇게 아팠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앞서 말했던 고2 자살시도 이후 이분은 자취방에 돌아와 삼일 동안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일 후가 돼서야 학교에 갔다고 했다. 그런데 행정실에서 부르더니 그동안 밀린 학비와 앞으로 낼 등록금을 누군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 내고 가셨다고 말씀해 주시더란다. 그 날 일이 다 끝나고 집에 와보니 이번엔 주인아주머니가 부르시더니 그동안 밀린 방세랑 졸업할 때까지 낼 방세를 누군가 내고 갔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인상착의를 듣고 생각해보니 바로 다니고 있는 교회 선생님이 같았다고 한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선생님을 찾아가 약속했다고 하셨다.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어른이 돼서 돈을 벌면 선생님 돈은 제가 꼭 갚겠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다정히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물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거야. 나에게 갚지 말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때가 되면 너도 너처럼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라” 이 말은 평생 가슴에 남아있다고 하셨다.


 이분은 지금 그렇게 힘들 때 고민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자살예방, 학생상담, 학교폭력 갈등 중재 등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위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 이 분은 경기도 학생 위기 지원단 단장을 맡고 계신 안해용 단장님이시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말도 떠오르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해용 단장님이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계시는데 그중에 자살예방으로 상담을 진행하다 만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중학생인 여자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던 강아지가 죽게 되어 슬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보던 엄마가 “울지 마. 강아지가 그거 하나뿐이니? 강아지가 죽은 게 그렇게 슬퍼? 그만 울어.”하시더니 바로 다음 날 다른 강아지를 사 오셨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선 어떻게든 딸을 위로해주려고 한 행동일 테지만 딸은 그런 엄마의 행동에 상처를 받게 되었다. 죽은 강아지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상황들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애도의 시간에 대해 말씀하시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한 번쯤은 멈추어 생각해 봐야겠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이겠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해도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던지, 아니면 내가 잃어버려 죽은 것 같은 시간에 대한 애도이든지, 뜻하지 않게 어그러져 놓고 싶지 않지만 나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놓아야만 하는 죽어버린 관계에 대한 슬픔이던지, 아니면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꿈을 포기하고 가슴에 안고 있는 안타까움이던지, 돌이 킬 수 없는 시간과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던지, 기억하고 싶지조차 않은 수치스러운 순간과 거기 머물러 있는 내 모습이든지, 그 어떤 모습이든지 우리는 대면해 주어야 한다. 모두가 품고 있는 상실과 아픔의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픔을 꺼내서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모습은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애도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이다.  

  

 조금은 부끄럽고, 두렵고, 슬프고, 아프고, 자책이 되어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덮어 놓았던 나의 애도의 시간! 용기 내어 한 번 꺼내 보면 어떨까? 슬픔으로 고여있는 샘이 터져 나온 뒤 맑게 드리워진 터위에 새로운 것들이 돋아 날 거라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아버지의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