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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시

 작년에 상담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된 적이 있다. 강의를 해주신 분은 상담학 교수이시자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며 상담을 하시는 강사님이셨다. 강사님께서 들려주셨던 한 내담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있다.


 자녀들이 "아버지가 너무 말썽을 부리시고 투박하게 여기저기 싸우고 다니셔서 어려움이 많다"며 상담을 의뢰해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다른 곳에서 여러 번의 상담을 거치신 후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의 부탁으로 상담을 가서도 상담사에게 윽박을 지르고 화를 내기 일쑤 셔서 매번 상담이 어려웠다고 한다.


 처음 강사분과 만났을 때도 왜 왔냐고 화내시며 상담을 거부하시고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원래 목소리가 그러세요?”

“그렇다. 어쩔래.”

“네. 계속 말씀하세요.”

그대로 들어주셨다고 한다. 화를 내면 내는 대로 듣고, 묻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한참 그러시더니 의아해하시더란다. 다른 상담사들과 다르다면서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 들을 만하냐고 물어 오셨단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그러신대 어쩌겠어요. 그냥 말씀하세요.”

하니 한참 가만히 있으시더니 차분히 입을 떼셨다고 한다. 아내랑 둘이 살았는데 아내분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집에서 함께 지내셨다고 했다. 딸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지내고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노인정도 소개해주어 노인정도 다니시면서 지냈단다. 그런데 밥을 먹다가도 아내 생각에 눈물이 나고, 노인정에 가서도 때때마다 눈물이 나더란다. 그 모습을 보고 딸이 아빠 마음은 알겠는데 제발 밖에 나가서는 울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이 나려는 걸 참고 막 뛰어 들어와 베란다에 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때마침 손주가 학교 갔다 돌아와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날 밤 딸이 아빠를 불러  “아빠 엄마 생각나 눈물 흘리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손주 보는 대서는 안 그러면 좋겠어.”라고 말했단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울지 말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될 줄을 모르겠어서 그냥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 보니 아내와 함께 했던 집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제일 힘들더라고 들려주셨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아침에 눈을 뜨면 방에 누워 외치는 첫 말이 "여보 어디 있니?” 였단다.

그럼 할머니가 “밥한다.”  그럼 할아버지가 “밥은 뭘, 그냥 와라.” 그럼 할머니가 “밥 다 했다.” 그것이 언제나 같은 하루였다고 한다. 또 함께 자려고 누워 있다 등이 간지러워서 긁어달라고 하면 할머니가 구박을 하셨다고 한다. 귀찮게 자려고 누우면 꼭 그런다고. 거실로 나와 창 새시에 비비고 있으면 어느새 따라 나와 “이리 와바라.”하며 등을 긁어 주셨다고 한다. 이 모습 또한 매일 같은 하루였다고. 한참을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하루가 열리고 닫히질 않으니 내 몬살겠다”라고 말씀하셨단다. “할아버지 진짜 목소리를 들은 것 같네요. 아내분과도 이 목소리로 대화 나누셨지요? 그럼 자식과도 이렇게 말하세요. 전화 한번 해 보세요.”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들어 “밥 먹었나? 나도 밥 먹었다. 밥 잘 먹고 있어라.”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며 마저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자식과도 많이 편해지시고 목소리도 훨씬 부드러워 지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내 자식이 내 맘 좋으라고 내가 좋아하는 장향동에 가 회를 사줬다고 그러더니 방에 들어가 노트 하나를 꺼내 오시더니 그날 쓴 글을 보여주셨다고 한다.

'장향동 회가 생각나 회를 먹으러 갔는데 당신을 향한 그리움만 먹고 오는구려.'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 할아버지의 글을 보며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의 한 줄 글이, 시가 되어 날아 올라 할머니에게 전해졌을 것 같다. 누군가 마음의 소리에 자분히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다면 깊이 있는 슬픔도 길어 올려 만날 용기가 생기나 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하루를 열리고 닫히게 해주는 문이 되어 주며, 붙들어 주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없어진 후에야 그 참을 수 없는 낯섦에 부대낄 것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다 있다. 아마도 그것의 큰 비중이 가족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하루가 되어준다.

 

 내가 열어가는 하루는 알람시계 소리와 어둠이다. 아무도 깨지 않은 어둠 홀로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남편을 기준으로 줄줄이 사탕 우리 세 딸을 깨우는 일상이다. 잘 때도 비슷하다. 다 큰 것 같은데 여전히 엄마 옆에서 자겠노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세 딸과 모두 침묵하자는 엄마의 우격다짐 소리가 하루를 닫는 문이 되어 준다. 나의 소중한 일상이다. 그리움을 삼키지 않고 함께 삐죽 대고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가족에게 감사하다. 너무나 익숙한 일상, 이 기적 같은 하루에 감사하다. 오늘의 나의 마음속 한 줄 글이 시가 되어 가족들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란다. "사랑합니다. 소중합니다. 고맙습니다. 축복합니다."


ps: 추석 연휴입니다. 마음속 이야기들을 길러 나누는 풍성하고 훈훈한 시간이 되시길 바래요.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이라는 기적을 마음껏 누리는 연휴가 되세요.^^ 점점 글을 쓰는 시간이 나무 아래서 쉬었다 가는 시간이 되어주어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나무 아래서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어주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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