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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삼척·영월(2): 장소 문의는 dm주세요^^

by 낡은용

오죽헌을 벗어나 강릉 성남시장에서 장칼국수를 먹었다. 북적북적한 시장, 식당 내부에서 돌아가던 선풍기 소리를 벗삼아 먹으니 한결 맛있었다. 기념선물로 유명한 커피콩빵도 샀고, 답사 전통에 따라 밤의 수다와 함께할 닭강정과 맥주를 사서 숙소에 돌아왔다. 원래는 시장에서 본 커피와인을 사오려 했는데, 잠깐 옆 가게에 서서 커피콩빵을 주워먹는 사이에 셔터를 내렸더라. 대신 강릉 여기저기 피어있던 백일홍이 생각나, 편의점에서 백일홍 맥주를 사 왔다. 씁쓸..한 것이 내가 좋아할 맛은 아니었다. 많이 남기자 MZ쌤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다 마시겠다며 좋아했고, 대신 나는 닭강정에 주력했다. 먹고 마시기 좋아하는 두 서른살 교사를 YG쌤은 귀엽게 봐 주실 뿐더러, 답사 기념으로 마련했다며 양말까지 선물해 주셨다.


또 끝없는 대화로 새벽을 달린 후 맞이한 둘째날 아침, YG쌤이 선물해주신 양말샷으로 상쾌한 시작!


어제보다 더 더워져 문을 나서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날은 아주 화창하고 맑아 사진을 찍으면 그림처럼 나온다. 서울은 비가 온다던데, 오늘도 어김없이 함께해 주시는 날씨요정에 감사를 드리며 향한 첫 장소는 강릉 대도호부 관아. 3분의 1크기 밖에 복원되지 않은 상태라지만 이미 너무나 큰 규모여서 당시에는 어떤 위용이 있는 곳이었을지 짐작 가능하다. 특히 임영관 삼문이라고, 고려시대에 강릉 객사로 쓰이던 정문이 그대로 커다랗게 남아 있다. 현판은 무려 공민왕의 친필이고, 현존하는 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문만 동그마니 남아 있는데 그 문만으로도 웬만한 건물을 압도한다.


도호부 객사에도 어김없이 배롱나무꽃이 펴 있어 너무나 아름다운데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서 셀카봉 설치하고 신나게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너무...너무 더워서 우리밖에 없구나...


YG쌤의 차로 이동하다가 목적지에 당도하면 잠깐 차를 세워 두곤 했는데, 잠깐만 세워둬도 다시 탈 때 자리에 바로 앉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반바지를 입었는데 달아오른 의자에 살갗이 닿는 것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얼마나 쨍하니 더우면 매미 소리도 햇빛 소리에 눌려 사라진 것 같은 이 날씨에, 계획한 곳은 모두 다니는 우리의 열정이여!!!



태양이 점점 타오르는 시간.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강릉에 가장 먼저 세워진 성당인 임당동 성당이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성당이 너무 예뻤고,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았다. 성당의 한켠에는 성직자 동상이 있는데, 이문근 신부님이라고 해서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하다가 알아냈다. 가톨릭 성가책에서 작사, 작곡가로 이름을 많이 뵌 것이다. 신앙심이 대단히 깊진 않지만 가톨릭 신자인 나,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이문근 신부님 동상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어 기뻤다.

외관만큼 예쁜 내부에 들어가서 짧게 기도를 드렸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대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역사 답사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셔서 일기예보가 어떻든 늘 눈비를 피해 맑은 날씨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셔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강릉을 떠나 삼척으로 이동하여, 바다가 보이는 '홍문어'라는 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물회를 원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덥고 배가 고프니 아주 맛있었다. 답사는 내 인생의 틀을 조금씩 넓혀준다.

공양왕릉에도 방문했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조선 건국 후 여기 삼척으로 귀양을 왔다가 몇년만에, 아들들과 함께 교살 당했다. 아무리 망국의 왕이라지만, 대부분의 고려 왕릉이 북한 땅에 있어 혼자 떨어진 존재라지만, 아무리 왕씨 후손의 씨가 말랐다지만... 잡초가 무성해 올라가볼 수도 없는 공양왕의 무덤.

우리는 이게 짠해서 이성계가 나빴네 너무했네 권력이란 게 잔혹하네 망국이란 슬픈 것이네 어쩌네 얘기를 나누긴 했는데, 어쨋거나 삼척시에서 '어룡제'를 지낼 때면 항상 먼저 여기에 제사를 지내준단다. 역시.. 연예인과 나랏님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더니.


이미 죽은 공양왕 걱정은 그만 두고 우리는 죽서루로 향했다. 관동별곡으로 많은 K중고딩의 원성을 산 송강 정철이 꼽은 관동지방 제 1경답게,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럴 만한 경치였다. 사람은 정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시피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누각에 또 임금들과 명사들이 앞다투어 글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어떤 유명인이 여기 아름답다고 인스타에 올리니, 인플루언서들이 너도나도 인증샷 찍어 올린 그런 느낌이었다. 기기는 다르지만 SNS란 어쩌면 인류와 함께 계속 존재해온 것이 아닐까?


고요한 죽서루의 정경을 만끽하며 우리는 더위를 식혔다. 이번 답사도 절반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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