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강릉·삼척·영월(3): 달빛만 가득 채워 돌아왔다네

강원도는 시원하다더니

by 낡은용

삼척시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앞에 엄청 큰 조형물이 있었는데, 이 고장의 주요 풍속인 '기줄다리기'였다. ('기'는 여기 말로 '게'라고 한다.) 가래질에 필요한 새끼줄을 힘들이지 않고 사람들이 단합하여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놀이로서, 당시 삼척부사였던 허목이 시작했다.

남인의 영수 허목은 예송논쟁 이런 데서나 이름을 들어봤을 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더 대단한 인물이었다. 삼척부사로 오게 된 것도 정치 문제로 좌천된 것이었는데, 고작 2년 있는 동안 얼마나 열일을 한 것인지 삼척 여기저기에 이 사람 흔적이 안 남은 데가 없다.


그런데 삼척 자체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가 본관 전주에서 좋아하는 기생 데리고 관리랑 싸우다가 도망쳐 1차 정착한 곳이었던 것이다!!강원도 지방 중 숙소 구하기가 편해서 계획에 넣은 지역이었는데, 유의미한 곳이었다. 나중에 더 제대로 볼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박물관 다음 코스는 천은사.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제왕운기」가 완성된 곳이다. 단군에 대한 서술부터 시작하여 우리 민족 의식에 근거한 역사서로 유명한 책이다. 저자 이승휴의 고향이 삼척이라 여기서 썼다는데 너무너무 고요하고 아름다운 절이어서 집중하여 책 쓰기엔 딱이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와 이건 아니지, 했던 건... 벌레가 너무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절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이승휴가 책을 쓴 생가도 둘러보는데 날은 너무 덥고 날벌레는 미쳐 날뛰었다. 언제나 덤덤하고 씩씩한 MZ쌤은 더위와 벌레에 휩싸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척척 앞서 나갔는데, 그녀의 검은 티셔츠에 흰 줄이 새겨졌 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알고 보니 너무 더워서 땀이 많이 난 나머지 소금이 생긴 것이다.. MZ쌤 역시 처음 겪는 일이라고. 나는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여름 캠프에 가서 한여름에 학생들 데리고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봤었다. 그 때의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즐거웠다.


바닷가를 코앞에 둔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종일 달궈진 몸을 바다에 먼저 적셔줄까 아니면 요기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바다에서 제대로 놀아볼 작정으로 배고프지 않게 먼저 밥부터 먹으러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피자와 맥주란.. 몸 안의 열기가 사악 빠져 나가는 시원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동해 바다에 가 보자! 하며 옷도 갈아입고 YG쌤이 준비해 오신 수영도구들까지 챙겨 바다로 갔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어서 어슴푸레한 가운데, 한걸음 한걸음 바다에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쎄한 고요함. 이미 입수 금지가 되어버린 시간이었던 것이다. 코앞에 바다를 두고 못 들어가니 정말로 애가 탔다. 빠르게 돌아서지 못하고 발을 계속 동동 굴리다 한번 바다에 담궈 보았는데, 뼈의 위치가 그려질 정도로 시원한 감각이 온몸을 감싸온다! 우리는 결국 바닷가에 앉아 발과 엉덩이만이라도 적셨다.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시원하던지.

그대로 자기에는 아쉬워서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와 음료, 과자, 그리고 대화를 더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기절, 말그대로 기절하였다.


마지막 날! 목조 건물이라 이런 저런 벌레는 많았지만 너무 예쁘고 좋았던 숙소를 떠나 바다앞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우리는 삼척을 떠나 마지막 목적지, 영월로 이동하였다. 좀더 내륙이라 그런지 날씨는 더 더워져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틀 만에 얼굴은 까매지고 모기에 이곳저곳 뜯겨 팔다리는 물론 얼굴도 부어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뻔한 말 같긴 하지만. 특히 영월로 왔기에 더 좋았다.


우선 도착 기념으로 곤드레밥과 제육볶음을 먹은 후 장릉으로 향했다. 조선 제 6대왕 단종의 무덤이다. 한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 부모님을 따라 2003년에, 그리고 대학생이었던 2015년에, 그리고 역사교사로서 2023년에 약 10년 주기로 이곳에 오게 되는 나는 올때마다 더 큰 슬픔을 느낀다. 단종보다 어린 나이였던 꼬마가 어른이 되어 가며 보이는 게 더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왕위를 뺏기고 유배를 온 단종은 결국 목숨까지 잃는데, 세조 정권은 제대로 장사를 지내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월 지방의 호장 엄흥도가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목숨 걸고 수습하여 일단 모셔둔 곳이 지금의 장릉에 이른 것이다.


장릉을 본 후에 배를 타고 강 하나를 건너 닿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는 나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다. 2003년 초등학생일 때 5월의 긴 연휴를 맞아 가족여행으로 왔던 곳이다. 서럽도록 짙푸른 강을 건너 닿은 외로운 유배지에서 끝모르게 높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울음소리를 냈다. 드높은 나무가 우거져 하늘은 어둡게만 보였다. 단종이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던 돌탑을 볼 때 어린 내 마음이 아팠다.

수백 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 장소에서 단종의 눈물을 지켜보고 들었기에, 관음송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나도 다짐했다. 이 알 수 없는, 그리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다짐을 한지 20년,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다짐,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그 세상을

내가 어른이 되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다시 봐야지


그 두 가지 다짐을 모두 이뤄서 살고 있는 삶이기에

나는 천 척 낚시줄에 낚이는 게 달빛뿐이라는 시구 하나에도 행복한 사람이다.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릉·삼척·영월(2): 장소 문의는 dm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