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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2): 가슴으로 하는 공부

by 낡은용

바다에서 약간만 달리면 바로 감은사지 석탑을 만날 수 있다. 감은사란,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완성한 절인데 지금은 터와 탑만 남아 있다. 감은사지 석탑은 동탑과 서탑 두 개의 탑이 사이 좋게 남아있다. 부여 정림사지 석탑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다른 건물 없이 터만 있는 곳에 동그마니 남아 있는 탑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모두 복원된 것도 아니고, 모두 없어진 것도 아닌 애매한 흔적이 주는 묘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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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공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초등학생들이 문화 탐방 와서 설명 들으며 생기로 채워 넣어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차 타고 조금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이견대라고 하는 정자. 문무왕릉이 지켜보이는 곳에 아들 신문왕이 세운 것이다. 감은사에 이어 신문왕의 효심이 아주 돋보인다. 그런데 MZ쌤이 혹시 아버지 유해를 잃어버려서 무마하려고 바다에 묻었다고 한 후 효도쇼를 벌인 거 아니냐고 해서 K민족의 효심은 짜게 식었다..!


이견대를 짧게 본 후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물회와 전복죽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지만, 나오면서 수조 안에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또 마음이 아팠다. 먹질 말든가, 안쓰러워 하질 말든가.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모습이 매번 얼마나 통탄스러운지. 이럴 때마다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나정이가 병아리 먹는 것 같아 불쌍해서 유정란 못 먹겠다 하자 아빠 성동일이 통닭은 두 마리씩 처먹으면서, 라고 비웃는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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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소했던 신라가 어쨌거나 삼국을 통일했다. 통일을 완수하고도 두고두고 나라를 걱정했던 천 오백년 전 임금의 넋이 담긴 바다를 뒤로 하고, 연두빛이 분홍빛을 밀어내는 산을 타고 달린다.

달려서 간 곳, 드디어 나왔습니다, 불국사.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로 빛나는 신라의 다이내믹한 불교사. 부처님을 따르는 힘으로 통일을 이뤘다고 믿었을 신라인들의 불심이 드러나는 절.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


(내 또래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초6때 당연히 이곳을 수학여행으로 왔었다. 그러나 잼민이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여행과 역사교사로서 공부하고자 한 답사는 당연히 달라야 하기에, 우리는 설명문을 아주 꼼꼼히 읽었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다보탑의 네 모서리에 사자상이 있었고, 그 중 하나만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모서리에 있나 빙글빙글 돌다 보니 그쪽이 바로 포토 스팟이란 것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우리가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니 어느 순간 줄이 생겼다. 후후, 여러분 여기가 진짜 스팟이었답니다!


청운교와 백운교, 범영루와 경루, 석가탑과 다보탑. 불국사 내의 유명한 곳들을 하나씩 훑고, 대웅전-무설전-관음전-비로전 등 전각들도 다 훑는다. 돌아 내려오는 길엔 이렇게 돌탑이 빼곡히 쌓인 곳이 있다. 작은 돌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나는 무속 신앙을 따르는 사람도 아닌데 돌을 쌓아놓은 곳만 보면 꼭 사진을 찍고 간직하고 싶다. 언제부터 쌓았을지는 모르지만 각각의 소망을 담았을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라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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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서 셀카 찍으려고 머리 흩날리다가 돌 한 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무도 보진 않았는데 죄인이 된 기분이 들어서 주워 올린 후 바로 자리를 떴다..

얼른 도망쳐 나와 극락전까지 보았다. 종교를 떠나 절에 오면 더없이 경건하고 맑아지는 느낌이 있기에 나도 언제나 한번씩 고개를 숙이고 축수발원을 한다.


불국사는 너무 좋았고, 특히 특별 게스트 HJ쌤이 좋아했다. 하지만 4월 초중순의 날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더웠기에,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불국사뷰라는 카페를 찾아 들렀다. 카페에서 바로 큰 강이 보여서 뭘까, 했는데 하동 저수지라고 한다. 불국사뷰가 아니라 저수지뷰였다. 경주바닥의 사람은 다 모여있는지 너무 북적거려서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을지 걱정했는데, 이 카페가 기어코 우리의 주문서를 바닥에 떨구었다. 그것도 모르고 30분 넘게 기다리던 우리는 어느새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뒤늦게 빵과 커피, 그리고 서비스 차원에서 준 머그컵까지 받아 들어 무거워진 짐을 챙긴 후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따라 올라갔다.

바로 석굴암을 가기 위해서였다. 석굴암 입구에 불국사, 석굴암을 창건(혹은 중건)한 걸로 알려져 있는 김대성 설화가 만화로 그려져 있다.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던 대성이가, 한 가지 중요한 걸 시주하면 엄청난 걸 받게 된다는 얘길 듣고 밭을 시주했다. 그리고 갑자기 죽어 버린 대성이. 그는 곧바로 다시 귀족집에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본인이 옆 동네에서 죽은 김대성의 환생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전생, 현생의 부모 모두를 위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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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말 그대로 돌로 된 절이다. 입구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저렇게 암석으로 된 절이 나온다. 70년대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습도 조절에 문제가 생겨 통유리 밖에서만 봐야 하는 유물이 되었고, 사진조차 남길 수 없다. 사진을 찍지 못하니 눈으로 더 깊게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직접 본 본존불은 정말 그 안정감과 무게감과 편안한 미소로 경외감을 자아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그런데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다. 보는 만큼 알게 된다. 역사 공부를 하며 석굴암을 꽤 익숙하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수학여행으로도 당연히 이 장소에 왔었겠거니 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적어도 머리털 꽤 자라고 난 후에는 와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세계 문화 유산인 석굴암의 의의, 형성 과정 등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직접 보고 느낀 것은 천지 차이.

나는 이렇게 또 머릿속에 있던 석굴암과 본존불을 가슴으로 옮겨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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