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박상이라는 작가가 2014년에 내놓은 소설 <예테보리 쌍쌍바>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뭐? 표지가 왜 저러냐고? 민망해도 좀 참아줘. 나도 썩 맘에 들진 않아. 뭐? 이름이 왜 그러냐고? 그래, 많이 당황했지? 이해해. 나도 내 이름을 들었을 때 작가 멱살을 잡을 뻔했거든. 그래도 괜찮아. 독특하니까. 방탄소년단도 데뷔 전에 그룹명을 듣고 프로듀서랑 싸울 뻔했다잖아. 그러니까 나, BTS와 동급일지도?
각설하고.
너희들 쌍쌍바가 뭔지는 알지? 막대 두 개가 꽂힌 초코 아이스바. 막대를 두 손으로 잡고 살살 쪼개면 똑같이 생긴 아이스크림이 두 개가 되지. 얼마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스크림이니? 얻어먹는 사람도 돈을 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잖아. 돈 낸 사람이 한 입 크게 베어 먹는 동안 옆에서 조바심 내며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런데 예테보리 쌍쌍바라니, 뭔 말인가 싶지? 쌍쌍바는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인데 왜 스웨덴 도시명을 갖다 붙였냔 말이야. 그건 작가가 은근히 도른자라서 그래. <예테보리 쌍쌍바>는 소설 속 소설의 제목이야. 일명 액자식 구성이라는 말씀. 내용은 이래. 스웨덴에 무협 고수(?) 둘이 있었는데, 두 사람의 가문은 몇 백 년 동안 원수지간이었어. 두 사람은 서로 갈고닦은 무술 실력으로 한 판 붙으려고 만났다가 지나가는 쌍쌍바 장수한테 쌍쌍바를 사 먹고 어깨동무를 하며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야. 왜 내가 작가더러 은근히 도른자라고 했는지 이제 좀 알겠지?
<예테보리 쌍쌍바>, 그러니까 내 전체적인 내용은 '선수'에 관한 이야기야. 여기서 말하는 선수는 자신이 하는 일에 스뽀오츠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뜻해. 스뽀오츠 정신이 뭐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아니겠어? 한마디로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진정한 프로'인 셈이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광택도 작가만큼이나 도른자야. 남들과 똑같은 삶이 싫다는 이유로 수능 날 그냥 집으로 돌아오거든. 화가 난 부모님은 주인공에게 독립을 강요해. 급기야는 주인공에게 등을 돌린 채 두 사람만 밥을 먹기도 한다. 서러워진 주인공은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구인 광고를 발견해.
'세차원 모집, 선수 모십니다'
주인공은 선수라는 말에 흥분해. 선수라니, 뭔가 일반인과는 격이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가 찾아 헤맨 것이 바로 이거였다는 걸 알게 되지. 과연, 세차장 주인 이원식 씨도 적잖이 도른자였어. 세차를 일종의 행위 예술이라고 여기면서 '선수'에 관한 개똥철학을 펼친다. 주인공은 이원식 씨의 철학과 카리스마에 한눈에 반해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세차 선수가 되기 위해 주인공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려줄게. 세차의 본질은 더러운 차를 깨끗하게 만드는 거잖아. 작은 티끌까지 신경 쓰려면 아무래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조깅으로 체력부터 쌓는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닦으려면 유연해야 하기 때문에 요가도 시작해. 차키를 던지며 갑질하는 고객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유지하려고 명상을 하기도 하지. 그리고 차를 깨끗하게 닦는답시고 하루 종일 겨우 한 대를 붙잡고 있으면 세차장은 돈을 벌 수 없겠지? 세차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각종 스킬을 연마하지. 예를 들어 차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먼지를 재빨리 털어내는 스킬이라던가 걸레를 길게 펼쳐 손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완전히 밀착한 채 차 지붕을 한 번에 닦는 기술 같은 거.
결국 주인공은 마의 벽이었던 5분이라는 기존 기록을 깨고 세차의 신이 돼. 하지만 그날, 세차를 마치자마자 쏟아진 폭우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넘어져 팔꿈치 부상을 입고 은퇴한다. 이원식 씨는 주인공의 은퇴를 아쉬워하면서 퇴직금과 함께 <예테보리 쌍쌍바> 전집을 선물해. 주인공은 그 후 중국집 배달원이나 출판사 직원 등으로 일하지만, 스스로 선수가 되지 못하거나 동료 중에 본받을 만한 선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오랫동안 방황해. 그리고 결국엔 한 레스토랑에서 설거지의 신으로 거듭나며 결국 선수로서 영광을 누린다는 내용이야.
이제 다시 문제의 쌍쌍바로 돌아가 보자. 쌍쌍바는 누가 만든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니? 뭐? 제과 회사에서 만든 거라고? 바보야, 그게 아니지. 평범한 사람은 쌍쌍바를 만들지 못해. 쌍쌍바는, 선수가 만든 거야. 아까 말했잖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스크림이라고. 얻어먹는 자에게도 돈을 낸 자와 똑같은 자격을 부여하는 아이스크림이라니까. 혼자 먹을 때는 또 어떠니? 어? 분명히 아이스림을 다 먹었는데, 이게 뭐야? 하나가 더 있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새 아이스크림을 두 번 즐길 수 있네? 세상에 이런 아이스크림이 또 있어? 여긴 선수의 영역이라구.
그리고 쌍쌍바는 똑 닮았어. 물론 나도 알아. 쪼개다 보면 삐꾸가 나서, 한쪽이 더 짧게 쪼개질 수도 있다는 거. 그렇다고 짧은 쌍쌍바가 쌍쌍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본질적으로는 둘 다 똑같은 쌍쌍바가 아닐까? 한 포장지에서 나왔으니 결국엔 똑같은 선수가 아닐까?
바로 그거야. <예테보리 쌍쌍바>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며 내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스뽀오츠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수이고,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결국 그 본질은 쌍쌍바처럼 똑같이 닮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어때. 박상이라는 작가, 도른자이지만 괜찮지?
자, 이제 나는 너희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고 싶구나.
Q. 너희가 생각하는 선수는 어떤 사람이니? 혹시 주위에서 선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본 적 있니? 그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니? 너는 어떤 영역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니? 그건 왜 그런데?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들어줘서 고맙다. 얼핏 들으면 시답잖은 소리 같겠지만, 내 질문을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특히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그 어떤 감동도 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이야.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건 너무 쪽팔린 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