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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Jan 26. 2017

[인생2막] 노후, 자식, 그리고 리스크

재무상담이 가져다준 단상 몇 개

1월 초순에 재무상담 받았습니다. 재무설계는 PB들 만나는 자산가들에나 해당한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오히려 취약한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주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커피 한 달간 안 사 먹으면 될 정도?

컵휘야~ 한 달간 안녕~ ;;;


재무설계는 컨설팅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컨설턴트가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죠. 우선 설계를 받는 사람이 본인의 생각과 상황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재무설계 첫날, 저는 재무 관련 자료들(보험, 펀드, 예금 등)을 제출했습니다. A4 한 장에 정리해보니 머리속에 잘 들어오더군요. 정리할 기회가 얻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생각합니다.


첫 미팅에서 설계인은 제가 여러 질문을 던지셨는데, 특이한 질문들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돈의 의미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어릴 적 돈과 관련된 기억은 뭡니까?"

"돈을 모아 퇴직 후엔 뭘 하고 싶으십니까?"


https://youtu.be/1YBzDZEr_GE

Why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 아.. 이 영상은 정말 최곱니다.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


어서 빨리 돈 버는 방법을 원하는 사람에겐 실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의미를 생각하게 해줘서, How가 아닌 Why와 What을 먼저 생각하게 해줘서. 다행히 저는 돈에 대해 초연(?)한 입장입니다. 부자가 될 생각도 없고(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게 더 현실적일 수도), 돈 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우선하며, 퇴직 후엔 와이프의 꿈을 돕고자 하는 것들이지요.



재무상담의 낯선 질문들


돈 모으는 이유를 물으면 애들 학비, 결혼자금, 노후자금 등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다만 '왜' 애들은 비싼 대학에 보내야 하는지, 지들 결혼을 '왜' 내가 거들어야 하는지, 노후에 '뭘' 할지 등에 대해선 생각이 깊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돈이 많아 펑펑 쓸 수 있을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물론 이 경우에도 벼락부자가 아니라면 노력형 부자들은 철학이 확실합니다), 없는 처지에 여러 가지 이벤트에 대응하자면 중심 없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봅니다.

모든 상사가 지시하지만, 다 똑같은 수준은 아니다. 물론 상사를 만나는 것은 복불복 ;;;


직장에서도 좋은 상사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준 분들이셨습니다. 시간 없고 바쁜데 구구절절 설명하긴 쉽지 않습니다만, 업무란 대개 길 건너 문구점에서 볼펜 하나 사 오는 것이 아니므로 지시를 받고 실행하는 직원 입장에선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건가?' 그 부분이 명확해져야 그 일과 본인이 하나가 돼서 움직일 수 있죠. 뭣도 모르고 일을 하는 건 일과 사람을 분리하고 나중엔 사람이 일에서 소외되게 됩니다. 진심으로 일에 몰두할 수 없죠.



좋은 상사들의 좋은 설명


돈에 대한 소박한(?) 제 꿈 때문인지 공격적이지 않은 설계안이 제시됐습니다. 부족한 보험 약정을 추가하고, 투자 경우 글로벌 쪽으로 좀 더 배분하라는. 다만 국민연금으로만 버텨야 하는 65세 이후엔 월 60~80만 원 정도 수입이 비더군요. 저는 월 250만 원(현재가치 기준)으로 퇴직 후를 설계했습니다. 노인네 둘이서 월 250이면 괜찮은 거죠. 지금도 250을 둘이 쓰질 못하거든요. 부족분은 일을 좀 더 하는 식으로 보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퇴직할 때는 정년이 65세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2의 직업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점점 늙어 갑니다. 더 오래 일해야 합니다. http://img.hani.co.kr/imgdb/resize/2017/0108/00501735_20170108.JPG


오래 사는 게 정말 축복이 아니란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생계 벌이에서 은퇴하고 몇 년 후면 저세상 사람이 되었는데 말이죠. 본인의 추가적인 생계에다 자식들의 생계까지 돌봐야 하는 책임감이 배가 되는 겁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노후의 최대 리스크는 자식이다'. 제 인생에서도 돈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이벤트는 아이들 대학/유학과 결혼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는 설명이 필요 없죠. 대학만 졸업하면 웬만한데 들어갔다던 그 시절은 저도 경험 못 해봤습니다. 취업이 안 돼 결국 노량진 학원가로 향하는 이들을 보면 맘이 참 안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같기도 하고요. 대학 졸업까지 시켜놨는데 취직 안 된다고 집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결혼 후 사회 정착까지 돌봐줘야 할까요? 난감한 문제입니다. 결혼까지로 시점을 정해뒀지만, 애들이 돈 없다고 징징대면 저도 어떻게 변할지 자신할 순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리스크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좋은 대학과 직업이 좋은 인생을 보증해주는 시대는 지났지요. 그래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습니다. 개인들은 이렇게 리스크를 피하려고 필사적인데, 국가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려고 유리 지갑으로 세금 냈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말이죠. 고개를 돌려 유럽 복지국가들을 살펴보면 국가에서 교육, 의료 서비스를 해주고, 연금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노후에 대한 걱정이 덜합니다. 물론 소득세가 살인적이지만 지금도 개인들은 저축에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걸 생각하면, 원천으로 떼어가고 나서 나중에 후하게 받는 게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까요?



개인의 리스크는 개인의 몫인가


유럽 사람들이 검소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배워야 한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들의 검소는 실제 돈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소득세가 50% 가까이 되는데 소득 기간에 쓸 돈이 없죠. 그래도 별걱정 없습니다. 교육과 의료가 거의 무상이어서 그렇습니다. 젊을 때는 쪼들리더라도 연금이 나오는 노후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는 겁니다. 개인들의 리스크를 국가가 대신 져주는 개념입니다. 사실 우리가 재테크에 쏟는 돈을 세금으로 내는 것과 다름 없죠. 불안 속에서 아끼는 돈 vs. 믿음 속에서 덜 쓰는 돈이랄까요.


조기 대선 얘기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론 '복지' 이슈가 대선 공약으로 폭넓게 논의되길 바랍니다. 복지는 퍼주기고, 사람들의 게으름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게 맞는다면 서구 유럽 국가들은 다들 어려워야 하겠죠. 하지만 실상은 복지 국가들의 국가경쟁력이 최상위권이란 사실입니다.


현재 대통령의 복지공약 이행실적(2014년 현재)


지난 두 정권을 통해 개인의 리스크는 개인이 도맡아 노력하는 '각자도생'의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그 속에서 독자 여러분들의 개별 인생의 그래프가 상향이었는지 하향이었는지는 '각자' 다를 겁니다. 다만 우리나라 전체 국민으로 생각해보면 하향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우리 애들을 위해 책임 있는 정부가 들어서는 다음 대선이길 희망해봅니다.


P.S

우울한 점만 말씀드렸습니다. 제 경우는 재무상담인께서 언급하신 긍정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결혼을 비교적 일찍 해서 아이들이 크다는 거였습니다. 재무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27살에 결혼했습니다. 금요일에 대학 졸업하고, 토요일에 결혼했지요. ^^ 그러다 보니 애도 일찍 낳았습니다. 아마 환갑 상은 애들한테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 둘을 일찍 치우면(?) 일찍 홀가분해지겠지요. 그래서 일찍 결혼하는 걸 추천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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