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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Jan 31. 2017

[인생2막] 이런 명절 어때요

명절 악몽에서 탈출하는 방법

올해도 설 전날 새벽 고속도로를 달렸다. 운 좋게 '5시간' 만에 고향 집에 도착했다(평소 3시간 거리). 아침밥도 마다한 채 난 잠자리로 곯아 떨어졌다. 물론 '아들'에만 해당하는 얘기고, '며느리'는 아침상을 치운 후에야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겨울 고향집 정원 모습


아들도 고향 집에 있는 게 맘 편한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18년 됐으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며느님'께는 '시월드'는 시월드인가 보다. 이미 집안의 결정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간 이상, 나는 늘 '그분들'의 심사를 살펴야 한다. 신문에선 '명절 후 이혼율이 올라간다'는 기사가 나온다. 빗발치는 '시어머니' 총탄과 '며느님' 총탄을 낮은 포복으로 피할밖에 방법이 없다(고부 사이에 낀 남자 얘기는 나중에 한번 다루기로).


편치 않는 고향행


그래도 위안으로 삼은 부분이 생겼다. 시어머님과 며느님께서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이 생긴 것.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을 허비 말고 외식을 하며, TV 보다는 밖에서 영화를 보자는 것으로! 아, 이 얼마나 혁명적인 의사결정인가! 진심 감사했다.


명절 음식은 이젠 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돼버렸다.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가 있던가 생각해보면... 이젠 없다. 없이 살던 때야 명절 음식의 의미가 컸겠지만 이젠 너무 많이 먹어 고민이다. 명절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은 또 좀 걸리는가.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만드는 재미도 있겠다만 그걸 위해 희생할 게 너무 많다.


자, 이제 음식 준비 시간은 벌었고, 식사는 외식하기로 했다. 이틀 머무는 동안 외식을 두 번 했다. 남는 시간엔 영화를 봤다. 두 편 봤다. 덕분에 뒤떨어졌던 내 영화 관람 경험치가 일시에 높아졌다.


두 끼 중 한번이었던 장어구이, 먹을 땐 즐겁더니 돈 낼 땐 괴롭더라


메가박스 OO점, 소박한(?) 영화관인데 재밌는 것은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관람을 위해선 줄을 서야 한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하게 됐을까. 열 여덞 번의 설과 추석을 보낸 후에 말이다. 사실 어머니의 나이듦과 관련이 있다.


명절이 바꿔야 하는 하나의 이유


어머니께서 아프시다. 예전 같이 부엌일을 못하신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혹사시킬 강단도 없으시다. 거기에 더해 예전의 미각을 잃으셨다. 본인이 만든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하시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외식이다. 서글픈 얘기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게 맞춰서 살아가는게 인간이다. 명절 처음으로 아버지와 내가 설거지를 했다.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시간을 우리는 이렇게 쓰기로 한 것이다.


인생에서 '가족'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가족과의 시간도 나이가 들면서 쓰임이 달라지는 것 같다. 고향집 방문을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 마느님과 합의를 봤다. 나중에 애들 결혼시켜도 명절에 꼭 우리 집에 오게 하지는 말자고. 애들도 바쁜 일상 중에 맞는 귀한 연휴인데 좀 쉬게 해주자고. 가끔은 지네들 여행을 간다면 손주들 우리가 봐주자고.


명절이 진정한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서운 고령화 국가에서 말이다.


P.S

위와 같이 결정할 수 있던 이유에는 또다른 사정이 있습니다. 우선 개신교 집안이라 제사 자체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따라서 제사음식이 없지요. 제사라는 것이 우리 전통입니다만, 음식 장만에 너무 많은 수고와 시간이 소모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저는 형제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출하게 명절 관련한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아, 제가 한 건 아니군요.


업데이트 1 / 2017. 2. 4

오늘 와이프와 결심한 게 있습니다. 아이들을 시집/장가 보내면 우리 집안은 '신정'을 쉬기로요. 그러면 설 연휴 때는 각자 시댁/처가에 갈 수도 있고요. 눈치 안 보고 여행도 가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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