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 작성을 위한 최적 프로세스
실제 경험담을 위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제 분신 같은 '김 대리'의 기획서 작성 좌충우돌기로 봐주십시오. 초급 버전입니다.
김 대리는 오늘 무척 긴장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입사 후 처음으로 경영진 앞에서 기획서 프리젠테이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 보다 두 시간 먼저 출근을 해 리허설을 했다. 프린터에서 출력되어 나오는 최종안을 쳐다보면서 생각이 스친다.
‘휴우~ 이걸 만든다고 거의 두 달을 쏟아 부었잖아…’
100페이지가 넘는 기획안이다.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김 대리. 그랬다. 두 달간 이 기획안 작성에 매달렸다. 예전에도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모두 프로젝트팀원으로서의 공동작업이었다. 이번 기획서 작성은 100% 김 대리의 책임으로 두 명의 신입직원과의 작업이었다. 기획안의 실무책임자는 김 대리였던 것이다.
김 대리의 첫 번째 프리젠테이션
오전 10시, 드디어 대회의실에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 모두가 참석한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김 대리는 발표 내내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같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팀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 이것으로 이번 기획안의 발표를 모두 마칩니다.”
발표가 끝나고 사장은 자리를 떠나면서 한마디 했다.
“수고했네. 이 과장은 잠시 좀 내 방으로 오지”
“네, 사장님.” 이 과장은 김 대리의 직속 상사였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사장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김 대리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발표가 끝나고 한 30분쯤이 흘렀을까. 사장실에서 나온 이 과장이 김 대리를 소회의실로 호출했다. 이 과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 대리, 우선 고생 많았어.”
“고생은요. 처음으로 큰일을 맡아서 즐겁게 일했습니다. 사장님께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음… 이번 기획프로젝트가 김 대리에게 처음으로 부여된 독립 프로젝트였다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래서였는지 미흡한 점이 많았던 거 같아.”
“어떤 점이 그랬는지요?"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문제분석이나 시장분석 내용은 좋은데 그로 인해 도출되는 결론이나 전략방향을 알기 힘들다고 하셨어. 나도 발표를 듣는 중간중간 그렇게 생각했지. 언제나 결론이 나오는가 하고 말이야. 이러저러한 상황이라는 전개는 있는데 그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라든지, 상황이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전략을 써서 나가야 한다는지 하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없었단 말이야. 그렇게 발표가 진행되면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데(So what?)란 생각과 도대체 왜 그런거야(Why so?)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결론이 미약한 기획서
“대부분 처음 기획안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인데, 기획의 프로세스가 ‘조사 – 분석 – 결론 도출’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조사단계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는 경향이 있어. 조사가 완벽하면 결론은 쉽게 도출될 거로 생각하는 거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닌가?”
“예. 의욕이 앞서서 관련 자료나 관련자 인터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제대로 된 분석을 하고,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려면 조사가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사실 몇 명을 더 붙어서 조사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자네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기획하는데도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임을 명심하게. 문제는 한정된 자원 타령을 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조사할지를 고민하는 것일세. 그런 고민이 없다면 사람 한둘 더 붙여 준다고 해서 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김 대리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맞다. 조사 기간을 너무 많이 잡은 건 사실이다. 애초 생각했던 기간도 초과해서 전체 일정에 무리를 주기까지 했었다.’
“부장님, 그 효율적인 조사방법은 무엇인가요?”
“조사방법이라고까지 할 건 없고, 사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돼.”
“사고하는 방법이요?”
“어려운 얘긴 아니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진 말라고. 핵심은 결론에 대해서 하나만 가정하지 않는 거야.”
“결론이 그럼 여러 개라는 걸 가정하라는 것인가요?”
“그런 말은 아니고, 미리 결론을 생각해보라는 거지. 자네도 가설을 세운다는 말은 알고 있겠지? 가설을 세우는 것도 기획에 필요한 자원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현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일 듯한 가설을 세워두고 ‘조사-분석’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는 거라고.”
“부장님 말씀은 알 거 같습니다. 그런데 가설이 너무나 잘못 돼서 길 잃은 양처럼 되면 어떡하죠?”
“그래, 좋은 질문이야. 우선 가설을 세울 때 전체 시간을 고려해서 사고해야 돼. 몇 번 정도의 가설을 세울 수 있는가, 각 가설을 검증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등. 그래야 시간을 맞출 수 있겠지? 처음 세운 가설은 좀 올바른 결론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가설을 계속 검증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론에 다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걸세.”
가설 검증에 집중하라
“기획은 사실 조사보다는 분석에서 판가름나게 되어 있어. 요리 재료가 같아도 요리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다르지 않은가 말이야. 실력 있는 사람은 정작 자기의 도구에 대해 큰 불평이 없는 법이라네. 조사된 내용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분석을 올바르게 해낸다면 좋은 결론에 다다를 수가 있지.”
“그럼 기획을 하면서 분석단계에 가장 많은 자원을 투여하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올바르게 분석하는 방법도 있겠군요?”
“그래, 분석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 방법은 ‘끝까지 쪼개기’라는 것이 있어.”
“끝까지 쪼개기요? 어떤 걸 쪼갠다는 거죠?”
“만약에 A라는 신규 사업을 기획한다고 해보자고. 그럼 A 산업에 대한 조사를 하겠지. 시장 상황은 어떻고, 경쟁자는 누구이며, 자사의 추진역량은 어떤지 먼저 조사하게 될 거야. 그런 뒤에 아까 말한 가설을 세워야지. 신규사업의 기회와 밝은 전망을 기초로 신규 시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실행방안을 수립하기로 우선 정한다면, 실행방안의 타당성이 그 가설에 대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핵심이 될 걸세.”
“아직 쪼개는 얘긴 없는데요.”
“응. 이제부터 좀 쪼개 봐야지. 실행방안을 구성할 요소들을 생각해봐. 영업 측면, 개발 측면, 재무 측면… 대충 이 정도가 될 거야.”
“어… 그건 마치 부서명을 나열하는 것과 같은 데요.”
“그래, 맞아. 우린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니 별 느낌이 없지만, 사실 회사의 일반적인 부서들도 오랜 시간 동안의 쪼개기, 즉 회사의 기능들을 어떤 묶음들로 구성하면 가장 효율적일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우선 영업적 측면을 생각해보자고. 신규 사업이니까 영업전략을 수립하고, 세부전술이나 정책을 만들어야 할 거고, 영업에 투입할 인력이나 기타 자금 등도 생각을 해봐야 할 거야. 이 정도를 1차 쪼개기로 하고, 인력 쪽으로 더 들어가 보면, 경험 있는 인력을 배치하기 위해 외부 충원과 내부유관 조직에서의 충원으로 나눠 볼 수 있겠지. 외부 충원은 헤드헌팅사나 사내직원 추천제를 생각할 수 있겠고, 내부충원은 자원자나 적합자에 대한 설득작업이 필요하겠네. 어때? 이 정도면 영업인력 충원에 대해선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아, 정말 그런데요. 이번 기획안 작성 땐 전체 그림 없이 사안 하나하나 접근했었는데, 미쳐 제가 생각질 못한 부분이었었네요.”
“김 대리, 기획이란 말이지, 절대 작은 그림에서 시작하는 게 아냐. 추상적인 것 같지만 우선 큰 그림을 그리고 나서 부분 작업을 하는 거야. 뼈대를 만들고 나서 살을 붙인다고나 할까? 이 점을 꼭 명심하게.”
큰 그림에서 시작하라
“다음은 이제 결론 부분인데, 자네 혹시 [One page proposal]이란 책을 본 적이 있나?”
“2004년도에 베스트셀러였잖아요. 본 적 있습니다. 한 페이지짜리 기획서를 만들라는 건 공감되는데 실제 그런 기획서가 보고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가요?”
“그래 맞아. 한 페이지 짜리 기획서를 좋게 볼 CEO는 드물긴 해. 달리 생각하면 한 페이지에는 절대 담을 수 없는 기획서들이 많아. 신규건물 건축제안서라든지, 제품개발계획서라든지... 한 페이지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도 없고, 담아서도 안 되지. 한 페이지 기획서라는 그 ‘한 페이지’에 매몰되기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분량으로 기획안을 작성한다고 이해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기획안을 받아볼 상대나 기획안의 내용에 따라 분량을 달라질 수 있다는 거군요.”
“그래 맞아. 결론을 작성하면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은 따로 있어.”
“어떤 거죠?”
“자네 마트에 자주 가나? 물건을 고를 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하는 고민의 순간에 어떤 걸 떠올리게 되나?”
“음… 그 물건의 브랜드나 선전 문구, 포장상태 같은 것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다네. 사람들은 내용도 중요시하지만, 그 내용을 표시하는 형식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걸 포장이라고 하는 거지.”
“포장이요? 포장은 좀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보태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요.”
“그래, 포장이란 말이 그런 뜻으로 쓰이는 건 알아. 하지만 잘못된 포장과 잘된 포장의 기준은 내용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포장이 쓰였는가, 아니면 내용엔 없는 부분까지 있다고 얘기하는가.”
“조금 어려운데요.”
기획서도 포장이 필요하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화장과 분장의 차이. 화장은 사람의 안면에서 강점은 부각해 주고, 약점은 가려주는 역할을 하지. 하지만 분장은 사람의 안면에 없는 걸 만든다고. 흉터를 만들거나 피를 흘리게 하거나… 특수분장을 생각해봐. 올바른 포장은 화장 정도의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 거야.”
“아, 그렇군요.”
“전에도 말했지만 사실 분석의 끝단계에서 모든 가설에 대한 검증이 끝나고 결론의 초입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고. 이 단계에 들어서면 기획자는 자신의 결론을 어떻게 표현해서 의사결정자의 동의/승인을 얻어낼까를 고민하게 되지. 이때 필요한 게 바로 결론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원칙이야.”
“김 대리, 내가 오늘 기획안 작성과 관련해서 해줄 얘기는 여기까지일세.”
“과장님,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을 해주십시오.”
“허허 이 사람. 그래 배우려는 자세는 기획자가 가져야 할 기본 성품이지. 이 친구, 싹수가 보이는데.”
“그런가요? 하하하.”
잘못된 기획안이 가져오는 현상
- So what? 이란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 Why so? 란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 요점이 없다는 반응을 듣는다
제대로 된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한 원칙
- 기획을 위한 자원(시간, 예산, 인력 등)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배분에 대해 사전 고려한다
-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식으로 결론에 접근한다
- 분석에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작은 그림을 구상한다
- 결론의 표현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한다
P.S
이 글은 2008년 8월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기억엔 포스팅 중 가장 조회수와 댓글이 많았습니다. 다시 봐도 괜찮은 내용이라 봅니다. 앞으로 주요 꼭지 별로 세부적으로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