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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Feb 17. 2023

처음, 일주일을 살다

사계절만 살아보면

일주일 동안 자주 흐리고 때론 비가 내렸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랬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옷장을 열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옷들을 모두 꺼내 옷걸이에 나란히 걸어 뒀지만 열 평도 되지 않는 집의 옷장엔 아직도 낙낙한 공간이 남아있었다.

며칠 전, (차에) 짐을 실을 때 도저히 공간이 없어 서울에 두고 와야 했던 옷들이 자꾸 생각났다. 옷장의 옷들은 나름 선택받은 옷들이었지만 막상 출근을 하려고 열어 보면 옷장엔 입고 나갈 옷이 없었다.

백 년 만의 한파가 와도 거뜬할 것 같은 두꺼운 오리털 패딩과 블랙의 얇은 코트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중간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취향이었다.

다른 편 옷장엔 색색의 옥스포드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고 서랍장엔 긴팔과 짧은팔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었는지 알 수 없는 티셔츠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너무 계절을 앞섰거나 너무 계절을 뒷 섰거나.


제주도니깐!

이런 생각이 문제였을까?


옥스포드 셔츠와 코트를 걸쳐 입고 출근을 했다.

오피스텔을 나가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요즘 자주 하는 실수가 '그놈의 제주도'다.

제주도라고 2월이 따뜻할 거란 무의식이 고른 옷들의 결과는 첫 출근에 덜덜 떨리는 지방 덩어리만 확인할 뿐이었다.


의식 흐름이 '뭔가를 잘 못 짚은 게(선택) 아닐까?'로 흘러가기도 했다.


첫날은 8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노동으로 인한 피곤함이 밀려왔다.


의지를 불태우며 새벽에 일어나 업무를 미리 체크했던 둘째날도 별다른 기억없이 하루 해는 저물었다.

그리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도.


제주에 있다고 실감하는 순간들은 하루에 있어서 아주 찰나와 같았다.

출근길에 봤던 어느 누군가의 집 담벼락 귤나무, 4차선을 달리며 스친 하얀 매화나무, 그래도 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이정표는 '나 제주야'라고 알리는 듯 했다.


첫 일주일은 제주도로 출장 온 느낌이었다.


'나, 이제 출장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데?'

금요일 저녁.

십여분을 달려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도착했다.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없어요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제주도의 퇴근 후 삶엔 즐거움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서 과연 저들 중에 누가 여행객일까 보는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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