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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Feb 12. 2023

제주 마스터(제린이편)

사계절만 살아보면

9회말 2 아웃 상황에서 역전의 신화를 써 내려가는 시간들이었다. 이직할 회사의 출근을 나흘 앞두고 원하는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 시키는 집을 구하게 됐으니 말이다.

작년 12월 초까지만 해도 친구 두 세명만 모이면 술자리 안주처럼 이야기하던 제주도의 삶이 전입신고까지 끝내며 도민으로 시작된 것이다.


인생을 계획하며 살았던 적은 딱히 없었지만 삶의 변화를 통해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분명한 충만감이었다.


- 집편

1.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이 지금 집의 상태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금물이다. 발품을 팔아야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다.

2. 년세 제도가 있다.

월세액의 1년(12)의 달을 곱하여 한꺼번에 지불하는 방식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 11을 곱해 한번에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적인 방법은 아니니 임대인에게 권리처럼 요구할 수는 없다)

3. 제주는 신구간 시기(이사를 많이 하는 시기, 지상의 신들이 하늘로 올라 가 있는 기간)라는게 있다. 대한 5일째 되는 날부터 입춘 3일 전까지를 이르며 이 때 이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4. 이 시기가 아니어도 집은 늘 있다. 시기가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집이 없다고 걱정하는 게 옳다.

5. 비행기를 타고 집을 보러 가야 하는 애로사항으로 인해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만 보고 계약을 한다는 말들이 있지만 실상 그런 일은 일 년에 1~2번 정도의 빈도라고 한다.


- 교통편

1. 제주도도 지방이다.

5분 10분마다 있던 지하철과 대중교통은 수도권 삶의 특혜였다.

2. 내비게이션을 무시하지 말자.

골목이 많아 어림짐작으로 가로질러 가면 겨울에 가차 없는 오르막에 렌트 비용 보다 수리비가 더 들지 모를 일이다.

3. 30 50 70 60km

도대체 달리라는 건지? 기어가라는 건지?

당황스럽겠지만 골목 어느 방향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짐작할 수 없는 게 제주다.

대한민국의 동남아는 제주가 아닐까 한다. 신호 없이 흐름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구간들이 의외로 많다.


- 생활편

1. 다이소는 소중하다.

다이소가 줄 서서 계산하는 곳인 줄 처음 알게 해 준 제주였다.

2. 이마트는 백화점이다.

다이소만 가다가 이마트에 가면 마치 백화점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 사람편

이제 여행이 아닌 생활이 시작되면서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이 카페 불친절하네?‘ ‘왜 다들 안 웃어?’

웃고 있는 사람들은 해변을 걷는 사람, 주문을 하는 사람, 기념품을 사는 사람, 야자수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뿐.

서울이랑 다른 부분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이었다.


난 너무나 당연한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은 여행객이라는 사실을.

카페에서 일하는 직장인, 잡화점에서 일하는 직장인, 관광지의 어느 부분에서 일하는 직장인, 웃지 않는 사람이 직장인이라는 사실.

불친절한 게 아니라 안 친절한 것뿐이었는데 편협한 나의 생각이 관광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감정노동까지 강요한건 아니었을까.


시작이다, 제주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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