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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Mar 18. 2023

지천에 핀 꽃, 여행객

사계절만 살아보면

지난주에 내린 봄비를 온몸으로 맞고 결국 감기에 걸렸다.

 '아프지는 않을까? 혹시 코로나는 아닐까?' 좌불안석의 일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주말이다.


봄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만 살다가 지는 목련이 좋다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나는 봄이다.


남해 다랑이 마을에서 감동했던 층층이 노란 물결을 이루던 유채꽃도 제주에선 지천에 피어있었다.

제주 기온의 변화무쌍함을 뚫고 꽃망울들 터트리는 꽃들을 보면 인간보다 강한 게 자연이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

 

제주살이 한 달에 종잡을 수 없는 건 제주 사람들의 알아들을 수 말(방언)과 무표정만이 아니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제주 날씨는 마치 미운 일곱 살 아이 같다.

어느 날은 귀여웠다가 어느 날은 한 대 콕 쥐어박고 싶기까지 했다.

여기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나의 일 년 뒤는 불 보듯 뻔한 새드엔딩이 쓰인 시나리오였다.


회사와 집을 무한으로 반복하는 일주일을 보내며, 도대체 내가 왜 제주에 왔는지 원론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작성했던 근로계약서의 숫자들과 아픈 몸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꿈만 꾸며 살기엔 세상 경험이 많았고, 현실만 보며 살기엔 행복이 그려지지 않는 미래였다.


'통장에 만족하는 숫자가 찍히면 일 년이 행복할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답을 찾아본다.

모든 걸 충족시키고 싶은 욕심이 문제지만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잠재우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답이었다.

'.. 아마, 그렇지 않았겠지...'

손안에 웅켜쥐고 있던 욕심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토요일,

날씨가 좋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켜 또다시 찾은 함덕의 바다에는 주말이라서 그런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벌써 여러 번 올랐던 서우봉의 풍경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오르내리는 여행객의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함덕 바다를 배경으로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예비부부들의 웨딩촬영은 제주 바람에 숨길 곳 없이 훤히 드러난 (예비) 신부의 어깨선과 팔을 보며 오늘의 고단함이 만족하는 결과물로 그들에게 돌아가길 절로 빌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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