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만 살아보면
‘뉑? 제주요?!?’
뜸하게 오는 연락에 필수 질문인 것 처럼 물어보는 말이
‘제주 어때?’였다.
며 칠 전 회사에서 두 번째 월급을 받았고,
임대인에게 네 번째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나의 최대 관심사 또한 뭍에서 제주로 온 사람들에게
‘살아보니 어때요, 제주?’였다.
내가 찾지 못 한 제주(삶)의 매력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찾고 싶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부양의 의무로 어깨가 무겁겠지만, 세입자로 사는 사람은 월세 계약서의 의무로 어깨가 무거워 다시 뭍으로 돌아 갈 생각을 못 한다. 전자는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쁨과 사랑의 시간으로 충족받겠지만
후자는 보금자리로 돌아가도 제주의 습도로 인해 회사에서 방전 됐던 체력이 백프로로 채워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떠 습기가 찬 거울을 보면 마치 3년 동안 사용한 나의 휴대폰 배터리가 떠 올랐다.
나올 때는 백프로였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빨간불이 들어오는.
빨래를 돌려 다시 사용하려면
속옷과 수건은 이틀,
청바지나 두께감이 있는 옷은 삼사일을 생각해야 했다.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좋아하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평일에 한두 번 더 입고 금요일 밤에 빨면 운이 좋으면 월요일에 다시 그 옷을 입을 수 있기도 했다.
인생의 복불복을 이런 사소한 것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입을 모아
‘제주도 너무 좋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짓말쟁이들!!!!
분명 그럴 수가 없는데 어떻게 저런 티끌 한 톨도 없는 긍정의 절대적인 표현을 쓸 수 있는 거지.
그날도 습도로 말려진 옷에서 쿰쿰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자연에 대한 기대를 자연이 배신하다니.
원래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은 곱절 아니 몇 백 몇 천배의 타격감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출근길
잿빛 하늘과 상반 되게 한라산의 허리는 초록으로 빛났다.
몇 년 전, 괌의 어딘가를 운전하며 봤던 온통 초록의 산의 정기처럼. 기분 좋은 묘한 느낌.
다, 싫어졌지만
제주의 초록과 파랑이 여전히 좋은 건
어쩌면 이게 앞으로 남은 제주 삶의 여지 같은 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초록이 빛났다, 분명히.
담을 수 없는 오늘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