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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Jan 26. 2024

소중하다, 이 시간

사계절만 살아보면

뉴스를 보면 서울은 작년에 이어 올해 유독 추운 날이 많은 듯했다.

영하 십몇 도, 이십몇 도는 도대체 얼마나 추운 걸까. 제주의 겨울 날씨에 영하를 웃도는 날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제주가 춥지 않단 말은 아니다. 바람이 불면 몇 겹을 껴 입어도 옷을 뚫고 바람이 휘몰아 들어온다. 그나마 그 바람을 뚫고 걸어 다닐 수 있다면 말이다.


지난주 이틀 동안 제주엔 많은 눈이 내렸다.

제주시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려도 되는가 싶을 만큼 내렸고 차를 가지고 어딜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도로 상황이었다. 제설작업이라는 게 제주에 있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는 처참했다. 제주에 내려와 몇 년 더 살아본 동료가 제주에는 제설작업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해가 뜨면 몇 시간 만에 녹을 눈이라 인력을 그런 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나? 일 년 가까이 살았지만 이럴 때면 당황스럽고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싶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늦어도 괜찮으니 천천히, 당신의 안전을

지키며 출근하라는 공지가 떴다.

(이 얼마나 정감 가는 말인가. 아침에 이런 글을 보면 누구나 없던 애사심도 생기지 않을까)


출근길 버스는 만원이었고 제주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며 위도 함께 쿨렁쿨렁거렸다.

제주의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었고, 이런 날은 나의 마음 보다 제주 하늘이 더 자주 바뀌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더니 동료가 가볍게 술을 곁들인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눈 내리는 밤의 집 앞 선술집은 진리요,

어묵탕은 국롤이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이야기가 길어질 수 록 서로의 삼십 대는 이십 대가 되고 다시 십 대가 되며 갓난쟁이 이야기까지 화젯거리가 되기 전에 우린 다음을 기약한다.


사람들이 밟은 발자국마다 빙판이며 도로도 빙판이었다.

도저히 내일 출근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아침이 되니 길이 질퍽해져 있었다.


제주는 대한민국이지만 알다가도 모를 제주나라다.


더 살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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