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만 살아보면
제주 생활은 그럭저럭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은 이유를 굳이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많은 것에서 열외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제주 삶의 특혜 같았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일상은 조금씩 변했다. 서울의 시간이 여유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팍팍한 삶이었다면 제주의 시간은 듬성듬성했다. 비워진 시간에 외로울 기회는 생각보단 많지 않았다. 시간들의 어느 날은 바다로 채웠고 어느 날은 숲으로 채워졌으며 또 다른 날은 언젠가는 떠날 날을 위해 그때 그때의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갔다.
일상을 살았지만 충족되었다.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는 도서관에 갔고, 할 일이 있을 때도 굳이 도서관을 그날의 경로에 넣었다.
몇 권의 책은 읽었고, 더 많은 책은 그대로 반납했다.
대하소설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의 (제주에서) 시간을 벌었고, 끝내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대하소설의 1권은 도서관을 몇 번 방문해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허탕이었다. 책의 10권까지를 완독 하게 되면 2023년 가을 점심시간 회사 근처를 배회하며 수 없이 고민했던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시간에 대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대하소설을 시작하려면 대출이 가능했을 때 1권은 의무적으로 읽었어야만 했다. 어떤 대하소설이든 2권부터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이 세상엔 나와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할 수 있을 때 해 보는 것.
인생에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
‘했다’와 ‘하지 않았다’만 남을 뿐이다.
그저 취미가 취향으로 물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