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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Feb 15. 2024

방향치의 숙명

사계절만 살아보면

하루라도 더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머물기 위해 10평짜리 월세방 기간을 꽉꽉 채우고 계약이 만료되는 날 이사를 했다. 작년 가을즈음부터 들어갈 집이 있었지만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가야 할 날에서야 남은 마지막 짐을 챙겨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밤 10시에 집을 나왔다.

받는 월급과 한 달 동안 나를 위해 지출하는 금액이 같은 삶에는 나름의 행복이 있었다, 비전은 없었지만.

그 사실은 깨닫지 말았어야 작년의 행복이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회사에서 기숙사 제안을 주었을 때 행복과 비전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난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사는 삶에는 행복도 곧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을.


회사의 기숙사행


학생 때도 하지 않았던 타인과의 동거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회사에서도 불편한데 집에서도 불편한 삶이란 도대체 어느 만큼의 불편함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오직 하나 믿을 거라곤 '사람은 적응의 동물' 동서고금 불변의 법칙인 그 말 뿐이었다.


방향치의 숙명


이사로 인해 출퇴근길도 변했다.

일 년 동안의 출퇴근 길에 익숙해져 '이제 내비 없이 집에 좀 찾아가겠는데?' 생각했는데 다시 리셋되어 새롭게 익혀야만 했다.

이틀 동안 출근길과 퇴근길은 매번 달라졌고, 퇴근길의 역방향으로 출근을 하고 싶었지만 방향이 바뀌었으니 나는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다.


작년의 기분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서울을 다시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는 기로에 섰던 초봄의 기분.

겨우 일주일 살아 본 새집은 집 보다 회사를 더 편하게 느끼게 했다.

그냥 살아갈 것이고, 그저 살아갈 뿐이겠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한 결정이 잘한 게 맞겠지? 선택의 방향이 이게 맞겠지?'


선택을 하고 나서 고민이나 불편함이 따라오면 선택의 방향에 의구심이 밀려 온다, 길처럼 선택도 방향치가 아닐까 하고.


성장이고 나발이고 서울로 가고 싶다.

따뜻한 부모님 집이 그립다.

작년 가을즈음 친구들에게 '모든 것에서 독립을 해야 어른인 거야, 경제적 부분까지 완전히 독립을 하고 난 어른으로 거듭났지.'라고 말했던 지난날의 나의 입을 꿰매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시간은 가겠지..

유채꽃은 이쁘게 피었고 주말에 날씨는 따뜻했다.


나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또 지구는 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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