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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Feb 25. 2024

정(情)

사계절만 살아보면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깔렸다.

도저히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국인만의 단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恨)이 그렇고 정(情)이 그렇다.

비슷한 영(어)단어는 있지만 결코 한국인이 느끼는 단어의 오롯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해 결국 고유의 말이 된 단어.


제주에서 살며 만난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행동과 말의 범위에서 벗어나)뉑?‘이라는 생각을 곧잘 들게 했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제주 사람들을 처음 대면 했을 때는 나긋나긋한 서울 사람들이 그리웠다.

‘저 사람들은 왜 화가 났지?’라는 생각은 ‘내가 뭘 잘 못 한 거야?’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에 갇혀 돌고 돌다가 결국 알 수 없는 그들의 안 친절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 년쯤 살아보니 그냥 쉽게 웃지 않을 뿐이었고,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 웃지 않을 뿐이었다. 굳이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을 뿐이었단 말이 더 맞을 것 같고,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하게 표정을 짓고 표현을 한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쉽지만 어렵다.

관계는 쉬웠다. 만약 타지에서 내려왔는데, 주변의 제주 사람이 당신에게 사용하는 단어와 표정에 온화함이 묻어있다면 50퍼센트 이상은 호감의 감정이다. 나의 경험으론 열에 아홉이 그랬다. 의뭉스러운 사람이 열에 하나란 뜻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가 들며 생긴 습관 중 하나가 질문을 하는 상대방의 의중이 무엇일까? 분석하는 습관이다. ‘쟤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될 것인가? 질문을 가장한 책임전가인가?’

의례적으로 직장에서 질문이 들어오면 ‘아, 또 책임전가네.’ 란 생각에 불쾌해졌다. 이 또한 제주에선 열에 아홉은 꽝이었다.

결국 단순한 질문, 일차원적인 궁금증.

그럴 때마다 오마이갓, 편협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 결혼식장 축하 자리에 동료가 딸과 함께 참석을 했고, 다른 동료가 굳이 현금을 빌려 그 아이 손에 지폐를 쥐어줬다. 초등학교 때 우리 이모가 남매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침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똑똑 노크를 하더니 아침에 싼 샌드위치와 딸기라떼라며 몰래 주고 간 동료.

육지에 올라갔다가 왔다며 그 지역 특상품을 주고 간 동료.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머뭇거리던 날 발견하고 “아,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궁금하네?”라고 말해주던 동료.

커다란 한라봉을 내밀며 “혼자 다 먹을 수 없어서요...”라고 했던 동료.


사람의 마음이 어렵고 무거웠지만 결국 감동받고 위로받는 것도 사람의 마음에서였다.

(어느 날은 또 무겁고 어렵고 피하고 싶겠지만.)


한과 정이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단어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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