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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May 16. 2024

회귀본능

사계절만 살아보면

5월, 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나무들은 초록을 머금고 있었다. 

차를 타고 1시간쯤 달리면 같은 제주지역이지만 정말 제주스러운 제주, 서귀포에 도착할 수 있다.

365일 사계절의 봄날에 이렇게 청명한 하늘을 보는 건 제주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일 년을 살면서 경험했다. 서울은 봄날에는 미세먼지가 극성이라면 제주에선 생각지도 못 한 미세먼지(체감 서울에만 미세먼지가 있는 줄 알았었다)와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날씨의 변화로 마음에 드는 날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는 건 똑같다.


따뜻한 봄바람에 운동을 끝내고 짧은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헬스장을 나온 게 문제였는지 주변에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게 문제였는지, 일주일 동안 맑음의 일기예보가 되어 있는 황금주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석가탄신일, 

나의 주도로 잡은 선약을 취소할 수 없었다. 많이 아픈 날을 지나 이제 견딜만한 날이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고 서귀포로 넘어갔다. 


짙은 녹음과 반짝이는 윤슬

무엇하나 나무랄 것 없는 자연환경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저 나, 자신이었다. 

이 정도의 풍경이라면 작년의 나라면 자연스럽게 '우와'정도의 감탄이 나와야 했는데... 사라졌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그렇다고 하기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 이제 제주의 자연이 정말 익숙해진 걸까?' 사라졌다.. 분명.


그러고 보니 어느 날부터 제주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제주 '궁극의 삶은 치열하지 않은'으로 종결되는) 살아가려던 노력도 사라졌다. 주변의 말과 감정에 쉽게 달떴고 간신히 유지해 오던 평온이 일순간 깨져 있었다.

그 평온이라는 것부터가 연고지가 없는 곳에서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찾아오는 외로움에 가까운 고요라는 허상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코올에 잔뜩 찌든 채 자리에 널브러져 헤드뱅이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자 했던 나의 모습이 (제주)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도 마치 회귀 본능처럼 그렇게 잠재되어 있었다.  


이런!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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