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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Jul 03. 2024

내가 아닐 이유도 없다

오늘의 생각

세탁기를 돌리고 출근을 하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지금쯤이면 세탁이 다 됐겠지'하며 세탁실로 갔다.

빨랫감을 꺼내 건조대로 옮겨 놓았더니 건조대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이내 세탁물에서 뚝뚝 물이 떨어진다.


아씨


불과 한 두 달 전 일이 뇌리에 스쳤다.

세탁실에 갔더니 지금처럼 멈춰있는데 탈수가 안 된 상태였다.

(하우스 메이트 말에 따르면) 그때 방문했다던 서비스센터 기사님이 분명 몇 년은 더 쓸 수 있는 세탁기라고 했다던데..

기숙사에 들어온 지 불과 반년도 안 됐는데 화장실 변기 고장에 세탁기만 벌써 두 번째 고장이라니.

것도 왜 또 내 차례에서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습하고 덥고 비도 오고 퇴근 후에 계획했던 일들이 무참히 무너졌다.

특별하진 않지만 작디작은 내 계획은 무너지고 나서 더 소중해 보였다.

퇴근 후 기숙사로 들어가 다시 한번 세탁기를 돌려봤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역시나 하는 실망감을 가져왔다.

오만가지 나쁜 생각들이 밀려왔다.


기숙사 입소 선택을 눈앞에 두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뱉어 놓은 말들이 발목을 잡는 이유 중 하나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 '평생 우리랑 같이 살 줄 알았는데...'라며 섭섭해하시는 부모님께 혼자 일어서 보려 하는 자식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지는 못 할 망정 마음의 짐이 되는 말을 하는 게 되려 서운하여 '이제 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면 그건 배우자뿐'이라고 모질게 뱉어 냈던 말의 발목


어려움에 봉착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나면  

".... 왜..?"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왜 나야? 왜 지금이야? 도대체 왜?

'왜'라는 생각은 불만의 단어였다.

'어떻게'를 생각해야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를 생각하는 게 맞다고!라는 생각은 했지만 '왜'라는 물음 안에 '어떻게'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하필이면 내가 세탁물을 돌리고 있을 때 (한 달 반 만에) 두 번씩이나 동일한 이유로 멈춘 건,

그냥 내가 아닐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A/S나 불러야겠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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