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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9. 2023

국제학교에서 사고 친 아들, 가슴이 철렁

국제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은 억울한 상황에서 분노를 참지 못했고 결국 폭발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이 다 돼 가던 2022년 10월 초.

아이들 학교 보내고 주변 지리를 익힐 겸 산책하던 중, 학교 연락 앱 알림이 떴다.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공놀이 중 친구와 다툰 둘째가 선생님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향해 공을 던져 분풀이를 했다는 것이었다.

메일엔 둘째가 선생님 말을 어떻게 듣지 않았는지, 당시 선생님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상황이 상세히 묘사돼 있었다.


학교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이라니,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졸지에 '문제아'가 돼버린 둘째를 당장이라도 데려와야 할 것 같아서 곧장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한테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아이를 낯선 땅에 데려와 문제아로 만든 것은 아닌지 만감이 교차했다.

학교 앞에 도착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정문에서 서성이고 있기를 한참.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둘째가 사서 선생님께 사과했고, 친구와도 문제가 잘 해결됐으니 둘째를 데려갈 필요는 없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스웨덴까지 와서 부족한 부모 노릇이 온 동네에 까발려진 것처럼 부끄러웠다.

한국 엄마들이 으레 그렇듯, 선생님께 문제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그리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거나 훈육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앞으로 아이를 똑바로 가르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 일부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는 너와 네 가족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교에서 발생한 일을 알린 것은 부모로서의 양육 태도를 평가하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공유하고 같이 더 좋은 방향을 찾기 위해서"라는 답장을 보냈다.

특히 둘째의 행동은 새 학교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 사이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이로 인해 둘째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때문에 모국어인 한글로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둘째에게 설명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담임 선생님이 만들어 보낸 상황 카드 목걸이

그리고 다음날 담임 선생님은 둘째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카드 목걸이를 만들어줬다.

카드 목걸이에는 둘째가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억울한 상황을 영어와 한글, 그림으로 간단히 표현한 것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선생님이 번역기를 돌려 하나하나 입력하고 만든 것들이었다.

둘째가 학교생활 중 번역사이트를 사용할 수 없거나, 선생님이 없는 브레이크 타임이나 방과 후 시간에 필요하면 친구에게 이 카드를 보여주라고 만들어준 것이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선생님의 배려가 깊게 담긴 조치였다.

너무나도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이 만들어 보낸 상황 카드 목걸이

학기 초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을 하던 날, "만일 생일 파티를 할 거면, 몇 명만 초대하지 말고 반 아이 모두를 초대해 달라. 물론 부모님이 부담이 되는 건 안다.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아이가 느낄 상처를 생각한다면, 반 아이 모두를 초대하지 않는 생일 파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던 선생님이었다.


남편은 한 번씩 "스웨덴에서 꼭 누구 한 사람을 한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둘째의 담임선생님을 데려가고 싶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정말이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깊은 신뢰감을 느끼게 해 준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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