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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31. 2023

유치원에서 인생 첫 이별, 막내의 폭풍 눈물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고 이역만리 스웨덴에 온 셋째.

셋째는 스웨덴에 오자마자 새 유치원에 빨리 가고 싶다고 마구 졸라댔다.

아내는 이곳에서 계속 살 게 아니라 기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셋째가 스웨덴 현지 유치원보다는 영어 유치원을 가길 바랐다.

아내의 고군분투로 유치원 선별, 등록 등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드디어 셋째가 영어 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기뻤다.

첫째, 둘째는 이미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셋째는 하루 종일 껌딱지처럼 같이 붙어 지냈는데 이제 해!방!이었다.

한국에서 영어로 자기소개를 외워온 셋째는 유치원에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며칠 다니더니 셋째는 등원할 때마다 유치원 안 가면 안 되냐고 말했다.

자기소개 정도의 간단한 어휘나 문장밖에 몰랐던 셋째는 유치원에서 패닉에 빠졌던 것 같다.

영어유치원이라고 하지만 한국처럼 영어를 배우는 유치원이 아니라 이미 모국어로 영어를 습득했거나 부모로부터 영어를 배워 어느 정도 능숙하게 대화가 가능한 아이들이 오는 유치원이었다.

영어 구사력에서 걸음마 단계, 완전 생초보인 셋째가 처음에 겪었을 혼란과 답답함은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 같았다.

그래도 셋째는 꿋꿋하게 삼남매 막내 특유의 친화력과 인싸력으로 잘 적응해 나갔다.

그럼에도 하원 시간에 만나는 셋째는 무척 지쳐 보였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등원하는 순간부터 하원할 때까지 모든 신경을 다 쏟아붓고 나서 부모를 만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엄청난 피곤이 몰려오는 것이리라.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못 하겠다.

처음에는 화장실 가는 거조차 제대로 말을 못 해 스트레스가 심했고 심지어 집까지 참고 오는 일도 있었다.

작은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의 배려와 이해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셋째는 활기를 되찾았다.

친구와도 잘 지내고 아이 특유의 스펀지 같은 흡수력으로 영어 실력도 나아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셋째의 유치원 적응엔 한 친구의 역할이 무척 컸다.

유치원이 맺어준 인연

유치원 초기부터 힘든 셋째를 항상 챙겨주고 옆에서 말 걸어주고 장난도 치고, 셋째를 데리러 가면 먼저 나를 보고는 '너네 아빠 왔어'라고 이야기해 주던 아이였다.

셋째가 집에 와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아이였다.

금발의 단발머리에 예쁘장하게 생겨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남자아이인 걸 알고 식구 모두 놀라기도 했다.

셋째는 어느 순간 유치원에 일찍 가고 싶다고 말했다.

빨리 가면 친구들도 없고 재미없을 텐데 왜 그러냐 해도 그냥 가고 싶다고 했다.

알고 보니 셋째는 일찍 등원하는 이 친구랑 같이 놀고 싶었던 것이었다.

셋째는 다른 친구 하고도 잘 지냈지만 유독 이 친구랑 '케미'가 잘 맞았던 거 같다.

그렇게 '봄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셋째가 6개월 정도 유치원에 다니던 즈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이 단짝 친구가 이사를 한다는 거였다. 그것도 스웨덴이 아닌 독일로.

셋째뿐 아니라 가족 모두 너무 슬펐다.

아이 픽업하며 이 친구를 많이 봐서인지 이사 소식에 유독 마음이 아팠다.

이사 가기 전날 부모가 많이 바쁠 텐데도 다른 친구의 생일잔치 때 아이를 데리고 왔다.

셋째도 생일잔치에서 이 친구를 만나 이별 전 마지막으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둘은 정작 생일인 친구는 아랑곳없이 시종 붙어다녔다.

이사 전날 유치원 친구 생일잔치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두 아이

단짝 친구와 헤어져 아쉽지만 그래도 덤덤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같던 셋째는 다음 날 저녁 엄마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유치원에 그 친구가 없는 게 너무 슬프고 너무 보고 싶다고 펑펑 눈물바람이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셋째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내한테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단짝 친구 엄마로부터 온 것이었다.

동영상 문자 메시지엔 그 단짝 친구 역시 울면서 셋째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와닿아 가슴이 찢어질 듯 슬펐다.

아내는 애틋한 두 아이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독일에 한번 가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달 여가 지난 지금도 셋째는 독일로 이사 간 친구를 떠올린다.

유치원에서 그 친구의 빈자리가 무척 크게 느껴질 터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겠지만 두 아이 마음속에 남은 서로를 향한 진심은 영원하리라 믿는다.

잊지만 않으면 언젠간 꼭 만날 수 있다.

엘리엇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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