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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2. 2023

패스미스한 아들에 얼굴 붉힌 아빠

둘째는 스웨덴에 와서 농구클럽에 등록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농구를 즐기고 있다.

우리로 치면 YMCA 농구단 같은 곳인데 40만원 정도를 내면 한 학기 동안 주 1회 수업과 농구공, 유니폼이 든 키트를 받을 수 있으니 좋았다.

둘째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불행히도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농구나 축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에 농구, 축구 골대가 없다니 정말 슬픈 현실이었다.

농구클럽 대항 경기

둘째는 이곳에 와서 뒤늦게 농구하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근데 선수는 달랑 5명, 모두 2014년생 동갑내기다.

감독, 코치 선생님은 여성이다.

정말 농구 선수 같은 기럭지에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겼다.

농구수업 하는 데 한 번도 못 가다가 최근 열린 클럽 대항 농구 경기에 가보게 돼 알게 된 사실이다

앞선 첫 번째 경기에서는 2게임 모두 이겼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이날 경기에 기대가 컸다.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배우는 아이들이 별도 비용 없이 정기적으로 정식 경기를 경험할 수 있는 건 참 좋았다.

스톡홀름 Thorildsplan 역 인근의 한 실내 코트에 들어서자 다른 팀들의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정식 경기장 크기의 3분의 1만 한 작은 코트 3개에서 동시에 서로 다른 경기가 펼쳐졌다.

관중석도 있고 규모만 작을 뿐이지 실제 성인 경기랑 똑같았다.

중고등학교 농구클럽 선수로 보이는 2명이 심판이었다.

경기는 3대 3으로 풀코트를 사용했다.

경기 전 선수 인사

경기가 시작됐다.

한눈에 봐도 상대팀 선수의 기량이 뛰어났다.

드리블, 스피드, 패스워크 등 우리 팀을 압도했다.

하지만 우리 팀 선수들도 선전하며 따라붙었다.

양 팀 선수 모두 아직 나이가 어리고 농구를 배운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더블드리블, 트레블링 반칙을 많이 범했다.

나름 맨투맨 수비를 하다가도 공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경기 초반 둘째가 생각지도 않던 골을 두 번이나 성공시켰다.

정말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

예전 아시안게임이던가 서장훈 현주엽 이상민 등이 주축인 한국이 만리장성 야오밍, 천재 가드 류웨이 등이 버틴 중국에 역전승했을 때보다 더 좋았다.

둘째는 클럽에 가장 늦게 들어갔고 농구수업도 많이 받지 않아 객관적인 실력 자체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실력이 드러났다.

계속 가만히 서서 패스를 받으려 하다 보니 가로채기를 당하기 일쑤였고 둘째는 이미 상대방 수비가 동료선수 옆을 지키는 상황에서 패스해 공을 뺏기는 일이 많았다.

특히 골밑에서 공격 시작 패스 3개를 연속으로 패스미스해 연속 3실점한 것은 팀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둘째 잘못도 크지만 패스를 받는 사람 역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 거 같았다.

응원석 첫 줄에 앉아서 경기를 보고 있는데 마치 내가 실수한 거마냥 얼굴이 화끈거렸고 뒤통수가 따가웠다.

또 뒷줄에 앉은 같은 팀 선수 부모한테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선수 5명이 교대로 출전하며 분투했지만 결국 2경기 모두 큰 점수차로 패배했다.

둘째가 정말 열심히 노력한 걸 알지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멋졌던 둘째의 러닝 점프슛. 이게 들어갔으면 원더골이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다른 선수 부모들은 잘한 건 힘차게 격려하고 실수하더라도 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농구 감독과 코치 선생님도 경기 내내 둘째가 열심히 수비하는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 후 둘째에게 굳이 찾아와 경기 잘했다고 이야기해 준 부모도 있었다.

어린 선수들의 운동 시작점이 다르고 매주 한 시간씩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기는 건데 사실 승패가 전부가 아니고 꼭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얼굴이 땀범벅이 된 둘째에게 미안했다.

나 혼자 경기에 몰입해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나 싶어 부끄러웠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경쟁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불쑥 나온 거 같아 반성도 됐다.

경기 종료

올해 초 스웨덴에서 핸드볼 월드컵이 열렸다.

스웨덴에서 핸드볼은 인기 종목이다(북유럽 국가들 모두 핸드볼 강팀이라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스웨덴은 4강에 올랐지만 결승 문턱에서 패배했다.

이 경기에 스웨덴 핸드볼 경기 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몰렸는데 스웨덴 관중들은 자국팀 패배에도 경기장을 춤을 추는 흥겨운 파티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가대항전에서 지면, 실수하거나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우리 스포츠 응원 문화와는 달라 신선했다.

그 비난 대열에 합류한 적이 있는 나로선 이 기사에 유독 눈길이 갔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표팀에서 활약한 최태욱 코치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도 기억이 남는다.

최 코치는 우리 축구와 일본 축구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축구 선수들의 대학 진학 제도를 바꾸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고교 선수들은 소속팀이 일정 정도 이상의 성적을 내야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이 어린 선수에게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심어주게 하고 또 실력 있는 선수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대안으로 경기 성적 위주가 아닌 일본이나 미국처럼 대학에 스카우터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다.

그래야 대회 성적과 별개로 숨은 좋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 축구계가 정말 모르는 건지 알고도 안 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경기를 어떻게 매번 이기나.

질 수도 있고 패배에서 발전의 계기를 찾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둘째의 연이은 패스미스에 얼굴을 붉힌 나 자신이 다시 한번 부끄러웠다.


요즘 둘째랑 시간 나는 대로 함께 농구를 즐기고 있다.

둘째가 농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몸은 안 따라주지만 이론만큼은 빠삭하다고 믿는 내가 특훈으로 둘째의 농구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웨덴은 생활체육일지 몰라도 한국은 역시 '스파르타 엘리트 교육'이지 하면서 말이다.

다음 공식시합이 기대된다.

지역 유소년 농구클럽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 랭킹 50위인 스웨덴은 38위인 한국보다 12단계 뒤처지는 이른바 농구강국은 아니다.

농구월드컵에도 그다지 출전하지 못했고 국제농구계에서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

NBA에 진출한 스웨덴 선수가 있다고 하는데 크게 존재감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공원 곳곳에, 지자체 운영 실내 체육관에 농구 코트가 많았다.

유소년 농구 클럽도 많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농구를 즐겨 생활체육으로써의 저변은 넓은 것 같았다.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스포츠를 배우고 공식 경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건 부러운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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