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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4. 2023

Kill Korean! 스웨덴에서 당한 인종차별?

얼마 전 버스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할머니로 보이는 한 여성이 하차하면서 나에게 무슨 말인지 모를 격한 말을 마구 쏟아냈다

"kill korean now?" 마지막 말만 겨우 알아들었다.

날벼락 같은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맞은편 승객도 황당한 듯 나와 그 할머니를 동시에 쳐다봤다.

당황, 혼란, 불쾌 등 온갖 나쁜 감정이 뒤섞인 것도 잠시.

나 역시 그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기에 서둘러 하차했는데 그 여성을 따라내리는 모양새가 됐다.

이렇게 돌아서기엔 너무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여성에게 무슨 말을 한 거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고는 휙 몸을 돌려 가버렸다.

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또 한방 얻어맞고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불쾌한 감정은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약간 진정되자 의문이 솟구쳤다.

도대체 그 여성은 내가 korean인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고 있었는데 한글이라도 본 것인지, 흔들리는 버스에서 스마트폰 작은 활자를 볼 정도로 소머즈급 시력이 되는 것인지.

유럽 사람이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인데 콕 집어 한국인이라고 지명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엔 아내가 한 스웨덴 행인으로부터 '이제 이민자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질 거다. 너희들은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투의 난데없는 훈계를 듣기도 했던 터라 그 여성의 난데없는 폭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스웨덴민주당 대표 지미 오케손(Jimmie Åkesson) (사진=dagens nyheter)

지난해 스웨덴 총선에서 좌파 연립 정부가 우파 연합에 패배했다.

주목할 만한 건 극우성향 스웨덴민주당(SD)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처음으로 제2당으로 올라섰다는 거다.

스웨덴민주당은 반이민, 반이슬람 등을 표방하며 지지세를 넓혀왔고, 선거에서 이민자 지원 축소, 총기사고 억제, 조직폭력범죄 처단 등을 내세워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스웨덴민주당은 보수당, 기독민주당, 자유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첫 여성 총리인 사민당 막달레나 안데르손 대표가 물러나고 울프 크리스테르손 보수당 대표가 총리가 됐다.

아직 스웨덴 정치계가 스웨덴민주당 총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나중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이민자의 영주권 기간이 경우에 따라 10년에서 3년으로 줄어드는 등 갱신 심사가 강화됐다.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의무 거주기간 역시 길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과 소수자 보호 등의 정책을 펼쳐왔고 독일과 더불어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등 적극적인 이민 우호 정책을 펴온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은 해외 입양도 많이 받아들였는데 5대 입양국 중 하나가 한국이다.

(몇 달 전 현지 언론 다겐스 니히터는 스웨덴의 해외 입양 문제를 다룬 기사를 내보기도 했고 스웨덴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5대 입양국의 불법 해외 입양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상태다.)

스웨덴 총리 울프 크리스테르손(Ulf Kristersson) (사진=dagens nyheter)

다른 유럽 국가처럼 스웨덴에서도 총기사고나 갱단 연루 조직범죄가 늘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그게 이민자와 관련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스웨덴민주당과 같은 극우 성향 정당이 세력을 넓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징세율이 40%에 이른다는 스웨덴에서 왜 이민자를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주장은 스웨덴 유권자에게 먹히는 레토릭이다.

아직 단일민족 국가 형태를 유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낸 세금을 왜 이민자에게 퍼줘야 하느냐는 말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실제 서구 국가 상당수에서 이런 논리는 극우파의 득세를 부추기는 하나의 논리가 되고 있다.

물론 사회 부적응, 소외, 범죄율 증가 등 이민자 문제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돌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스웨덴에 정착하려는 사람에겐 스웨덴민주당의 득세와 우파 연립 여당의 정책 변화는 분명 달갑지 않은 신호임에 틀림없다.

6개월 정도 스웨덴에 있어보니 스웨덴의 시민 의식과 치안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늘 그렇듯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몇몇 불쾌한 경험보다 고맙고 기분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

한 할머니로부터 당한 폭언이 인종차별로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다.

우파 연립 정부의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왼쪽)와 연정 파트너인 지미 오케손 스웨덴민주당 대표 (사진=Dagens Nyheter)

사회민주주의의 탄생 배경은 경제적 호황에서 비롯됐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소위 잘 나갈 때는, 가진 게 많을 때는 좀 도와줘도 별 문제가 없지만 살기 팍팍하면, 나 살기도 어렵다고 생각되면 복지보다는 자력갱생이 먼저다.

더군다나 벌써 1년을 훌쩍 넘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국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전기세가 폭등하고 물가는 치솟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영미권 국가들의 시장민주주의가 대세이지만, 조금은 다르고 사람 냄새나는 스웨덴 사민주의의 지속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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