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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08. 2023

우연히 본 북한대사관...분단국가를 체감

최근 스톡홀름 리딩외 도서관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로 'ASSASSINS'이라는 영화를 봤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개봉된 영화였다.

한국 영화 제목은 '암살자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의 전모를 다뤘다.

라이언 화이트 감독의 영화 '어쌔신'

라이언 화이트라는 외국인 감독이 이 문제를 파고들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는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 살인에 가담한 두 여성, 변호인, 주변 인물 등을 만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한 배후를 추적한다.

영화 어쌔신의 한 장면

연예인 지망생인 인도네시아 여성과 베트남 여성은 각각 북한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 몰카 동영상을 함께 찍자는 꼬임에 넘어갔다.

앞서 수차례 예행연습을 거쳐 사건 당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온 김정남에게 차례로 눈과 얼굴을 만지고 도주했다.

이들의 손에는 VX라는 맹독성 화합물이 묻혀 있었고 눈과 피부를 통해 VX가 온몸으로 퍼진 김정남은 2시간 만에 숨졌다.

두 여성은 VX 관련 성분을 차례로 김정남 얼굴에 발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의문은 김정남 얼굴에 VX 성분을 두번째로 바른 여성이 범행 후 재빨리 손을 씻었다고 해도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였다.

앞서 다른 여성이 묻힌 VX 성분과 자신의 손에 묻은 물질이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영화 어쌔신의 한 장면

사건 후 붙잡힌 이 여성들은 로션을 손에 바른 뒤 얼굴에 바르는 몰카 동영상을 찍는 줄만 알았지, 살인을 저지르게 되리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 여성들에게 이 같은 행동을 사주한 인물들은 북한 사람들이었다.

이 북한사람들은 사건 당일 쿠알라룸푸르 공항 CCTV에 포착됐고 범행 후 비행기를 타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리정철이라는 북한인이 붙잡히기도 했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영화는 사건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살인사건으로 공식 종결됐다.

두 여성은 사건 2년여 만에 재판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살인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혹은 상해죄로 기소됐다가 석방됐다.

영화 어쌔신 중 북한의 '3대 세습을 반대한다'는 김정남의 발언

결국 김정일 위원장 사후 후대 세습 구도에서 밀려난 김정남이 북한에 의해 살해됐을 정황을 영화는 보여준다.

같은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김정남은 "개인적으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반대한다"는 언론 인터뷰까지 해 북한의 눈밖에 난 상태였다.

김정일 후계자로 김정남을 내세우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 장성택(김정은 위원장 고모부)의 숙청과 김정남의 피살은 백두 혈통을 잇는 김정은 유일지배체제로 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2017년 2월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내 곧 잊힌 김정남 피살사건의 뒷이야기를 접하게 돼 흥미진진했다.


스웨덴에 오기 전 관련 책을 읽으면서 북유럽 복지국가 이미지만 강했던 스웨덴의 다른 면모를 알게 됐다.

스웨덴은  지금 나토 가입 신청을 한 상태지만 과거부터 중립적인 외교 스탠스를 표방하는 국가였다.

이 때문에 북한과 정식 수교를 맺은 나라 중 하나이고 주스웨덴 북한대사관도 있다.

스웨덴은 서방국가 중 처음으로 평양에 대사관을 둔 나라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지자 스웨덴은 평양에 대사관 인력을 모두 철수시켰고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다.

판문점에서 한국의 휴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스웨덴 장교(사진=Dagens Nyheter)

스웨덴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중립적인 외교정책으로 스웨덴은 북미 회담에서 중재역할을 하거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최근 스웨덴 언론 다겐스 니히터(Dagens Nyheter)에선 한국과 북한 경계지역인 비무장지대(DMZ) 판문점에 근무하는 스웨덴 장교 5명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스위스 군장교 5명과 함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중립국 감시 위원회를 대신해 70년간 한국의 휴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의 휴전협정 준수 여부는 폴란드가 감시해 왔는데 1995년 폴란드의 나토(NATO) 가입 의사 표명 이후 북한은 폴란드 장교를 쫓아냈다고 한다.

스톡홀름에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

스웨덴엔 북한대사관과 한국대사관이 동시에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북한은 현재 스웨덴, 독일, 스페인 등 유럽 13개국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탈북자로서 첫 국회의원이 된 태구민(태영호) 의원도 과거 주스웨덴 북한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스웨덴에 북한대사관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가 몇 달 전 우연히 대사관 위치를 알게 돼 놀랐다.

주말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다가 북한대사관 명판을 봤다.

주스웨덴 북한대사관

도로변의 한 단독주택을 빌려서 쓰고 있는 듯했는데 금색 명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한글이 선명했다.

보통 각국 대사관이 주로 스톡홀름과 리딩외에 모여 있는데 북한대사관은 약간 변두리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대사관 건물 전면 국기봉에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과거 북미회담을 보면 스웨덴에서 실무회담이나 물밑 협상이 진행됐고 북한대사관의 움직임은 큰 관심사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스웨덴에서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새삼 느꼈다.

북한대사관의 인공기와 명판

스웨덴 언론에서는 북한 관련 뉴스가 많이 보도된다.

대부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뉴스지만 스웨덴에서도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뤄지는 듯했다.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의 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해 북한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해로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사람은 북한이 남한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쏘기가 쉽지 않고 대체로 미국을 향한 무력시위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하면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북한에 대한 호전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일전에 버스에서 한 스웨덴 할머니로부터 "Kill korean now"라는 폭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상황을 전해 들은 아내는 '그 할머니가 당신을 북한사람으로 보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내가 북한사람처럼 생겼단 말이냐'고 웃고 넘겼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는 보도를 통해 각인된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으니까.

스웨덴 현지 언론의 북한 미사일 인용 보도 (사진=Dagens Nyheter 홈페이지)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 미사일을 쏘게 될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 속에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막힌 북한으로선 핵무기 보유가 유일한 돌파구일 테니까 말이다.

북한은 핵무기와 경제제재를 맞바꾸려 할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정전협정, 북미 간의 평화협정도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은 이란처럼 미국에 백기투항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분명한 건 그 길로 가는 과정이 매우 지루할 거라는 점이다.

군산복합체 국가인 미국이 긴장 상태가 아닌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지도 의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에 끼인 한반도의 평화가 순순히 다가올지 모르겠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난 두 번의 기회에서 북한과 미국이 핵동결 내지 평화협정으로 가는 합의 정도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2000년대 초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북한에 방문하는 등 북미 해빙 기류가 마련됐지만 부시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냉각됐다.

트럼프 정부 때는 2020년 북한과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결국 핵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커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왜 그렇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노벨평화상이라도 받으려 했는지.)


한편으론 먼 훗날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이 화해 무드로 가게 돼 서로 활발히 교류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70년 이상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갈등과 혼란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앞서 진행된 독일 통일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동독과 서독인의 갈등은 독일을 하나로 만드는 데 큰 장애요인이라는 시각이 많다.

통일과 별개로 서로 다른 사회체제와 사람들의 인식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건 어렵지만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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