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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l 05. 2019

'주 52시간 근로제' 정말 시행되나요?

근로기준법 2조 법조문 한 줄이 바꿀 풍경들

첫 줄을 쓰기 시작한 시간은 목요일 오전 11시, 대학가 프랜차이즈 커피숍 창가 자리다. 커피를 마시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여기서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은 아직 나 혼자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회사에 있을 테고, 또 여기는 회사가 별로 없는 대학 앞이니깐.


사실 나 역시 12년 전 언론사에 입사한 이후, 평일 오전을 이렇게 여유 있게 보낸 적은 극히 드물다. 평소였다면 기자회견장에서 정신없이 타이핑을 치고 있거나, 팀장이나 반장의 지시에 따라 취재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날 숙취를 해소하지 못해 빌빌거리며 온라인용 기사를 쓰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은 1주일에 한번 오후에 출근하는 날, 지난 7월 1일 본격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만들어낸 변화다.




"1주일은 7일"이라고 하니 세상이 바뀌었네~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었다고 하나,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은 용어를 설명하는 근로기준법 2조 1항이다.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문장이 딱 하나 삽입됐는데, 그만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근로기준법 (법률 제15513호, 2018.3.20 일부 개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7."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


1주일은 원래 7일이 아니냐고? 이 부분은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이하 '근로기준법'을 '법'으로 지칭)


'주 68시간 근로제'라 불렸던 과거 법도 근로시간 규정은 지금과 같다.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법 제50조)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법 제53조) 결국 법에 적힌 글자로만 보면 1주 최대 근로시간은 '40시간+12시간=52시간'이 됨직하다.


그런데 52시간을 넘게 일을 시켜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독특한 행정해석 때문이었다.


달력의 1주는 7일이지만...


고용노동부는 "1주에는 휴일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독특한 해석지침을 갖고 있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1주는 평일(월요일~금요일)만 포함된다"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이 경우 1주일 노동시간은 52시간이 아니라 최대 68시간이 된다. 궤변 같아 보여도 고용노동부 논리를 찬찬히 따라가 보자.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단 이 글에선 토요일과 일요일이 '휴일'이라고 간주한다.)


일단 '월~금' 노동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최대 52시간이다. 문제는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1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니, 이번엔 '1일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 본다.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법 제50조②) 이 규정을 근거로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8시간씩 '휴일 특근'을 시킬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법을 어기지 않고도 최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을 따져보자. 일단 '월~'금에 52시간, 그리고 토요일 8시간, 일요일 8시간 해서, 도합 68시간이 된다. (52시간+8시간+8시간=68시간) 흔히 법 개정 이전이 '주 68시간 근로제'라 불렸던 것은 바로 이같은 해석 때문이다.



1주일을 '7일'이라 못했던 까닭은?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복잡하게 법을 개정하지 말고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바꿔서 "1주일은 7일"로 해석하면 되는 문제 아니었을까? 비슷한 궁금증을 어느 국회의원도 가졌던 것 같다. 관련 질문에 대한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답변을 좀 길지만 옮겨보도록 하겠다.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 : "위원님 말씀하신 대로 법 해석을, 저희 행정해석을 바꿔서 일주일의 총근로를 연장․휴일을 다 포함해서 52시간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굉장히 근로시간이, 약 40만 원 임금이 줆과 동시에 중소기업은 가동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더구나 위반하면, 통상임금 지난번 판결 났을 때는 급여를 더 주면 위법의 문제는 없어지는데 이건 가동을 줄이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러면 다 처벌해야 되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입법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2017년 1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 11쪽)


"1주가 왜 7일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답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1953년부터 그렇게 해석했다. 둘째, 근로시간이 줄면 근로자 임금이 줄어들고 중소기업도 어려워진다. 셋째, 다 처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행정부는 행정지침을 못 바꾸겠다는 결론이었다. 여기에 가끔은 "입법으로 해결을 하려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좀 복잡해 보이는 말이지만, 쉽게 풀면 이런 거다. "국회에서 합의해서 법을 바꿔와 보든가..."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는 대한민국 국회에선, "입법으로 해결"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여야가 합의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다. 근로시간 같이 파장이 큰 사안은 더욱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8년 2월 27일 새벽 3시 17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여야는 "1주는 7일"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한다. 이 법은 환노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오후 4시 49분쯤 국회 본회의에서도 가결됐다. 5년 동안 논의된 법안이, 소위원회 합의 이후 단 13시간 30분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이다.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한 이유는 조금 복잡하니,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한다.)


2018년 2월 '주 52시간 근로제'를 여야 합의로 입법한 대한민국 국회


처벌당하지 않으려는 사장님들의 몸부림


사장님들은 이제 급해졌다. 근로시간 규정(법 제50조)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요즘처럼 퇴사가 잦은 시대엔, 직원 몇 명이 회사를 때려치우면서 작정하고 고발하면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회사마다 갖가지 해법이 등장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금요일을 '전사 휴무일'로 정하는 '격주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곳도 있고, 아예 화끈하게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기로 한 회사도 있다. 'PC 오프제'나 사무실 소등 같은 것도 대응책이다.


물론 이런 게 야근은 그대로인데 정상참작과 감형(減刑)만 목적인 '쇼'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추세인 것만 분명해 보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8명이 근로시간 단축 이후 '삶의 질'에 대해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직장인들이 많이 쓰는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앱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물론 지난 1년간 정부가 단속을 유예하면서 아직 제도는 본격화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까지는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에서만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는 탓에, 근로시간 단축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50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 52시간제'가 확대 실시되는 내년 1월부터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또 일부 사업주가 '주 52시간제'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기 시작하면, 근로시간 단축의 흐름은 더욱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판사님이 징역을 선고해야 제도가 자리 잡습니다...


법의 힘, 입법의 힘


현대 사회는 '법치주의' 사회다. 의식할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법은 우리의 삶을 규제한다. 출퇴근 시간부터,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 내가 사는 전셋집의 수리비를 누가 내느냐까지 모두 법 테두리 안에서 정해진다.


'주 5일제'도 2003년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바꾸면서 도입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선진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주 5일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법을 바꾸니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토요일에 쉬는 것을 이상하다 하지 않는다. ('주 68시간제' 덕에 주말에 회사에 끌려 나왔던 점은 별개의 문제다.)


이처럼 국회는 힘이 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욕먹지만, 사회를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곳도 국회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안이 '탕탕탕' 의사봉 3번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 의결되면, 좋으나 싫으나 세상은 바뀐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된다. 모름지기 유용한 도구라면 그 사용법을 적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 취지로 일단은 이렇게 7월부터 생긴 잉여 시간을 소진해보려 한다.


(이 글은 '주 52시간제'의 협찬으로 작성됐습니다. 근무시간 땡땡이 아닙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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